[교통캠페인]안승일/내가 본 파리의 교통문화

  • 입력 1999년 3월 7일 19시 55분


4년째 서울시 파리주재관으로 근무하면서 느낀 파리의 교통문화는 한마디로 ‘보행자 우선의 교통문화’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도로에서는 차량이 푸른 신호를 받아 진행할 수 있어도 보행자가 건너고 있으면 기다려 준다. 빨간 신호라도 거리 사정에 따라 적당히 길을 건너는 보행자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 때도 우리처럼 인도를 잘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차도를 쪼개 만든다. 그렇지 않아도 차도가 좁은데 이렇게 하는 이유는 파리시 교통정책의 밑바탕에 인간중심적 가치관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어딜 가든 휠체어가 쉽게 통행할 수 있도록 횡단보도 보도턱도 낮춰 놓았다.

신호등이 설치된 위치도 흥미롭다. 횡단보도 3∼5m 전방, 운전석 우측 정지선 부분 길가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정지선을 지나 횡단보도 가까이에 차를 세우면 신호를 볼 수가 없다. 차량들이 횡단보도를 침범해 정지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셈이다. 횡단보도와 신호등 설치에도 차량의 흐름보다는 보행자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 파리 교통정책의 일면이다.

교통안전은 시설과 교통정책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파리 시민에게 배워야 할 점이 있다. 다름아닌 질서의식과 양보정신이다. 차로가 줄어드는 지점에서 미소를 지어가며 차례차례 진행하는 질서정연한 모습, 노인이 지팡이를 집고 천천히 길을 건널 때는 차량 진행신호로 바뀌어도 노인이 건널 때까지 기다리다 진행하는 운전자들을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굳이 ‘질서는 아름답다’는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파리시민들은 ‘똘레랑스(참을성, 양보)’가 몸에 배어 있고 이것이 사고를 줄이는 교통문화로 자리잡았다.

안승일(서울시 파리주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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