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현대자동차와 정세영

  • 입력 1999년 3월 3일 19시 21분


80년대 국산 자동차는 해외에서 ‘외교관’몫도 해냈다. 히말라야 산록의 네팔같은 나라에서는 새하얀 포니차 몇대가 외교부 의전용으로 쓰였다. 그 포니차에 평양 외교관들이 타고 카트만두 시가를 달리는 것을 보던 ‘감회’도 새롭다. 북한 사람이 외계인처럼 멀고도 두려운 존재로 느껴지던 그런 시절이었으니까. 당시 중국의 외교부장도 네팔에선 포니를 타고 다녔다고 했다.

▽그 무렵 인도에서 근무하던 한 무역진흥공사 간부의 얘기였다. 북한 외교관들이 현대자동차가 만든 차를 타고 다니기에 말을 걸었다. “남조선 차를 다 타고 다니느냐”고. 그랬더니 대답이 “전두환 로태우가 만든 게 아니고 남조선 인민들이 만든 것이니까 타고 다닌다. 왜!”라더라나. 서남아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남미같은 데서도 국산차는 한국인에게 긍지 그 자체였다.

▽현대자동차는 자동차 수리공도 했던 정주영(鄭周永)씨가 건설업으로 대성한 뒤 세운 회사다. 67년 포드자동차 조립 생산으로 시작해 10년만에 국산차 포니를 내놓기에 이른다. 포드측이 한국시장을 얕잡아 보고 조립만 고집하고 합작생산을 꺼리자 정주영씨는 과감히 손을 끊었다. 그리곤 아우 정세영(鄭世永)씨에게 “100% 국산차를 만들 방안을 내라”고 지시한다.

▽정세영씨는 이탈리아로 달려가 설계 용역회사에 모델 디자인을 의뢰하고 영국으로 가서 차량제작 전문가를 만났다. 그렇게 해서 포니가 나오고 현대 신화는 탄생한 것이다. 세영씨는 두꺼운 북미 유럽 시장을 뚫고 세계적인 자동차회사로 키우기 위해 30여년을 뛰었다. 노사분규의 현장에도 뛰어들어 수습해 내곤 했다. 그가 이제 이사회 의장이라는 자리에서도 물러나 일선을 떠났다. 빅딜시대의 ‘정세영 퇴진’은 여러 갈래의 감회를 준다.

김충식 <논설위원>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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