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49)

  • 입력 1999년 2월 25일 19시 24분


나는 상행선을 타지 못하고 고속버스 편으로 마산까지 빠져 나가서는 거기서 밤 기차를 타고 약속대로 영등포 역에서 내렸다. 우리는 일단 동우네 집으로 갔다. 동우는 형이 운영하다가 비워둔 마찌꼬바 수준의 작은 공장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널찍한 공장 건물과 창고와 숙직하는 방까지 있어서 우리가 은신하기에는 맞춤한 장소였다. 우리는 긴 논의도 필요없이 광주에서의 참상을 알리는 선전 작업에 들어갔다. 수동 조작하는 마스터 인쇄기를 들여오고 내가 문건을 쓰고 동우가 인쇄하면 석준이가 커다란 두 개의 보스턴 백에 가득 넣고 나가서 행동할 조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유신 말기에 피 작업을 할 적에는 치안의 신경망이 몹시 예민하던 시절이라 보다 치밀하고 소극적으로 했었다. 우리는 지질이 얇은 타이프 종이에 고무판에 도장 새기듯 선동적인 구호를 파서 등사 잉크를 묻혀서 찍었다. 대개는 표어처럼 짤막하고 격렬한 열 자 이내의 문구를 새겼다. 약국에서 파는 고무 골무를 손가락에 끼우고 모든 작업을 했는데 이렇게 찍은 구호들을 가는 띠처럼 일일이 가위로 오렸다. 우리는 그것들을 돈다발처럼 코트나 점퍼 안주머니에 넣고 사람이 많은 시장과 주말의 번화가 골목으로 나갔다. 안주머니를 찢고는 코트 자락 안에서 종이조각들을 한 줌씩 집어내어 땅으로 흘리며 돌아다녔다. 노트나 카드에 붙이는 스티커에 싸인펜으로 휘갈긴 구호를 써서 좌석버스의 등받이나 공중전화 박스 안에 붙이고 다니기도 했다. 어떤 조원은 만원버스 안에서 남의 등 뒤에 스티커를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항쟁 기간은 그때와는 다른 상황이었다. 우리는 실패로 끝날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이 밝혀지고 세상이 올바르게 변화할 장래를 믿었다. 마치 돌 벽에 부딪치는 작은 물결이 시간이 흐르면서 금 가게 하고 돌이 빠져 나오고 구멍이 나서 드디어 무너지듯이. 우리는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서울의 여덟 개 구역을 분담하기로 했다. 우선 A구역은 관공서와 대기업의 빌딩이 모여 있는 곳으로 사대문 안의 서남쪽 중심 구역으로 설정했다. B구역은 대학가 주변 지역, C구역은 도시 외곽의 공장지대와 달동네 주변, 그리고 D구역은 변두리 상가지역 등으로 정했다. 다시 이들 구역을 남북 동서로 나누어 여덟 개 구역으로 나누었다. 우리는 이 중에서 A구역은 위험지역 내지는 비상지역으로 정하고 그러나 지식층들이 많은 대기업 빌딩 주변을 주요 작전 지역으로 보았다. B와 C구역은 선전 효과가 가장 큰 지역이라고 보았으며 위험은 A구역에 비해서 훨씬 덜하다고 여겼다. 끝으로 D구역은 도시의 여러 지역 가운데 완충지대로 보고 각 조가 만나서 출발했다가 되돌아와 다른 임무로 들어갈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정류장으로 생각했다. 우리는 일시에 도시 전체에서 같은 시각에 유인물을 살포하는 대작전을 실시하기도 했지만 대개는 조별로 날짜를 나누어 불규칙하게 뿌리는 소작전을 하루에 몇 차례씩 치러냈다. 나와 동우, 석준이와 건이가 각각 한 조를 이루어 예비 답사를 나가거나 행동조가 거사하는 현장 근처에서 점검을 하기도 했다.

동우는 이런 일에 익숙했다. 그는 이전에 카터가 방한할 때에 전도사 한 사람과 팀을 짜서 환영 아치를 태워 버리는 행동으로 독재정권을 인정해주는 미국에 항의하려고 했었다. 그들은 세 사람씩 조를 이루어 제2한강교와 광화문에 세워진 환영 아치를 맡았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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