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21)

  • 입력 1999년 1월 24일 19시 50분


무등산 자락에 다 와서 그가 차를 세웠다.

형님은 앉아 계쇼. 꽃 한 다발 사올라요.

삼거리 모퉁이에 꽃집이 보였다. 나도 건이 뒤를 따라 내렸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자 싱싱한 화초의 향내와 습기를 머금은 온기로 기분이 좋아졌다. 장미며 언제부터인가 흔해진 안개꽃이며 카네이션이며 국화도 색색가지가 보였다. 건이는 머리를 주억거리고 뭔가 속으로 숫자를 헤아려 보고나서 꽃묶음을 따로따로 사서 다발을 넷이나 만들었다.

무슨 꽃을 그렇게 많이 사.

사자고 허면 한도 없어라우. 형님 친하던 아우들만 해도 벌써 몇이요?

나는 그저 건이가 하자는 대로 잠자코 뒷전에 섰다가 나온다. 날씨는 별로 춥지는 않은 듯 한데 바람이 불어 제법 쌀쌀했다. 우리는 산으로 오르는 길가에 봉긋이 솟은 언덕 위로 올라갔다.

이 우에가 아직도 비제도권이고 저 아래 제도권이 있습니다. 묏등도 우 아래로 갈려 버렸고만이라.

그렇게 이죽이면서 올라간 건이는 대번에 남수 앞에 가서 선다. 누가 갖다 놓았는지 소주 병에 시들어버린 꽃이 꽂혀 있었다. 건이는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듯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렸다.

형, 나 왔소. 오늘은 현우 형님 델꼬 왔는디 회포 좀 푸시오.

자그마한 봉분에 돋은 마른 풀잎들이 겨울 바람에 떨고 있었다. 어떻게… 지낼만 하냐, 라고 나는 마음 속의 입을 떼었다. 남수가 가무잡잡한 얼굴에 입을 크게 벌리고 씩 웃는 듯했다. 남수가 독서회 사건으로 먼저 잠수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이십년도 넘은 옛날 일이었다. 그는 다른 조직 사건으로 십년을 살고 나보다 먼저 세상에 나갔다. 광주에서 피의 봉기가 있었던 때에 그는 이미 감옥에 있었으며 그가 나왔을 때엔 나는 남수와 엇갈려서 감옥에 들어 앉아 있었다. 우리가 만났던 칠십년대에 나는 남도의 어느 군에서 고등학교 선생을 하면서 유학 준비 중이었다. 우리는 둘 다 젊었고 유신 정권을 반대했다. 나는 그에게 손으로 베껴 쓴 세르게이·에세닌의 시를 읽어 주었지. 그 낡은 노트는 어디서 굴러 들어왔는지 기억에 없었다.

늙으신 어머님 상기도 평안하신지

나 또한 살아 있습니다 그리운 어머님

상기도 당신이 사시는 오막살이에

그 말할 수 없는 저녁 노을이 지고 있습니까

나는 들었어요

당신이 애타는 마음을 숨기고

나 때문에 가슴을 조이신다고

이따금 철 지난 헌옷을 꺼내 입고

신작로 가으로 나오신다고

그리고 뒷 구절은 어떻게 계속 되던가 가물가물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이제 나는 선술집의 이름없는 따바리시치, 행여 식칼에 찔렸을까 걱정하지 마십시오…였는지도 모른다.

봄은 가고 물 오른 가지와 넝쿨이

나의 집 좁은 뜰을 덮을 때

아 그제야말로 나로 돌아가리라

남수가 서울로 떠나던 날 밤이 생각났다. 나는 시골 집의 바깥채를 빌려서 혼자 쓰고 있었는데 퇴창 문을 밀면 툇마루가 있고 바로 담장가에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있었다.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쏴아 하는 파도소리처럼 나뭇잎들이 서로 맞부비는 소리가 들렸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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