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세계인권선언 50돌에

  • 입력 1998년 12월 9일 19시 43분


오늘은 유엔총회가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한 지 50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이다. 이 선언은 인권이야말로 인류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보편적 가치임을 일깨우고 있다. 특히 인권은 인간의 천부적 권리로서 국가권력보다도 우선한다는 것이 세계인권선언의 기본정신이다. 이 선언은 곧바로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각국 헌법과 법률에 그 정신이 반영돼 사실상의 국제규범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는 유엔이 지정한 ‘세계인권의 해’이기도 하다.

때맞춰 국내에서는 인권문제에 관한 관심과 논쟁이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한해였다. 그런 가운데 정부가 추진한 몇가지 인권정책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일제시대부터 60여년간 시행해온 공안사범의 사상전향제를 준법서약제로 바꿔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자 한 조치라든지 국가보안법 적용을 축소해 구속인원을 작년 대비 30%나 줄인 것, 인권위원회 설치를 핵심으로 하는 인권법의 제정 추진 등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검사의 공소권 독점 폐단을 없애기 위한 제도인 재정신청의 대상을 대폭 확대하겠다던 약속은 온데 간데 없다. 논란중인 특별검사제 도입 여부와도 관련이 있는 만큼 정부입장을 조속히 정리해야 할 사안이다.

수사과정의 적법절차 문제를 비롯해 인권의 사각지대도 곳곳에 잔존해 있다. 밤샘조사 가혹행위 욕설 관행은 물론 진술거부권과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 영장 실질심사 요청권 등을 피의자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있다. 경찰서 보호실의 인권유린과 마구잡이 검문행태도 그대로다. 특히 사정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통신감청과 계좌추적의 남용은 사생활 침해의 우려를 낳았다. 장애인 등 소외계층의 인권문제는 말할 나위도 없다.

법과 제도, 정책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공무원과 국민의 의식수준이 함께 따르지 못하면 ‘인권’은 장식품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도 이제 국제사회에서 인권선진국 소리를 듣기 시작했으나 국민의 체감인권은 그렇지 못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세계인권선언 50주년에 맞추어 추진해온 인권법 제정이 내년으로 넘어가게 된 것은 유감이다. 인권위 위상을 놓고 법무부와 여당, 시민단체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한 탓도 있지만 충분한 논의과정이 생략된 데도 원인이 있다.

인권위가 국가기구화하면 사실상 대통령 밑에 들어가 오히려 정치적 영향을 받을 위험성이 있다. 법체계의 혼란, 기존 사법기능의 예속화 등도 외면할 수 없다. 인권위에 수사권과 시정명령권을 주면 그 권한남용을 감독하는 또 다른 기구가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 본란은 인권위가 독립된 민간기구로 출범해 시민과 여론의 힘으로 실효성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기존입장을 재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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