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현장 지구촌리포트 25]유러貨 출범

입력 1998-12-09 19:23수정 2009-09-2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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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프랑입니다. 9유러30센트군요.”

프랑스 파리 오페라하우스 앞의 유서깊은 ‘카페 드라 페(평화다방)’. 이곳에서 찍혀 나오는 영수증엔 얼마전부터 프랑스의 공식화폐인 프랑 바로 밑에 유러(Euro)라는 새로운 화폐단위가 등장했다.

오샹과 모노프리 같은 파리 시내의 대형 유통체인점들도 상품가격을 프랑과 유러로 표시하면서 매장 입구에 ‘유러코너’를 개설해 유러화 정보 팸플릿을 나눠주는 장면이 이제 일상적인 모습이 됐다.

유러랜드에 가입한 은행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어김없이 유러코너를 마련해 놓고 고객들에게 어떻게 해야 피해를 보지 않을 수 있는 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동네의 치즈가게부터 은행 보험회사 대형유통점에 이르기까지 유럽은 지금 ‘유러’라는 새로운 통화체제에 적응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유러화 출범을 앞두고 가장 큰 과제는 단연 은행과 기업들의 전산망 프로그램을 바꾸는 문제. 유러화로 인해 야기되는 전산망의 갖가지 문제점을 이곳에서는 ‘유러버그’라고 부른다. 이때문에 웬만한 기업은 ‘미스터(혹은 미즈)유러’라는 유러화 문제 전담자를 새로 배치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유러버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프랑스 최대 은행인 크레디아그리콜의 미스터유러 로베르 부르소부사장은 “99년부터 2002년까지 3년간의 유예기간 동안 각 은행들이 유러화와 프랑화를 동시에 취급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를 바꿔야 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은행들이 ‘밀레니엄버그(컴퓨터 2천년문제)’로 법석을 떠는 동안 유럽의 은행들은 ‘유러 버그’라는 문제까지 겹쳐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설명하는 전산망의 문제는 크게 두가지.

“유러랜드 가입국가들은 유러통화 교환시 소수점 이하 여섯자리까지 계산하도록 요구하고 있죠. 현재 은행의 전산시스템은 소수점 다섯자리까지 밖에 인식을 못합니다.”

“달러를 프랑으로 바꿀 때는 대략 6대 1의 환율을 적용하면 되기 때문에 곱셈으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달러를 유러화로 환산하려면 1.1달러가 1유러화이기 때문에 계산이 복잡해지죠. 더구나 1프랑이 유러화로 정확히 얼마가 될지는 12월 31일 오후 2시까지 기다려 봐야 압니다.”

부르소부사장과 2백여명의 컴퓨터 기술자들은 은행의 주전산기 소프트웨어를 교체하기 위한 작업에 한창이다. 이 은행에서 사용하고 있는 수 만 카피의 각종 프로그램에서 유러화를 처리할 수 있도록 손을 봐 놓았고 현재 신뢰성 테스트를 계속하고 있다.

부르소부사장은 고생하는 만큼 결실이 있다고 말한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유러화의 출현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시큰둥하던 미국인들이 요즘은 부산을 떨며 투자하겠다고 야단입니다. 유러화는 단지 통화가 바뀌는 것 뿐 아니라 견고한 경제블럭의 탄생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유러화가 세계경제의 패권을 놓고 달러와 맞서려면 이 정도 기술적인 장벽은 감수해야죠.”

그러나 아직도 유러화 문제 풀기는 ‘산넘어 산’이라는 게 그의 설명.

“2002년이 되면 또다른 위기가 닥칩니다.저희 은행만 해도 손님이 1천7백만명인데 이들이 2002년 1월 1일 한꺼번에 몰려들어 헌 돈을 새 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끔찍한 일이죠.”

은행창구 뿐 아니라 현금자동지급기도 한바탕 홍역을 치를 전망이다. 앞으로 3년동안 유럽지역의 모든 현금자동지급기는 기술자들의 손을 거쳐야 한다.

유러랜드 11개국의 조폐창 역시 유러화 탄생을 위해 부산하게 움직이는 곳. 그도 그럴 것이 2001년이면 이곳에서 76억 유러 분량의 동전을 찍어내야 한다. 무게로 치면 무려 3만t. 이 돈을 보관하려면 금고보다는 창고가 필요할 정도다.

2002년이면 프랑스 은행은 20억 유러 지폐를 보유하게 된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 유러랜드를 모두 합치면 무려 동전 7백억유러와 지폐 1백60억유러를 갖게 된다.

유통업체들도 3년의 유예기간 동안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직원들이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다닐만큼 규모가 큰 프랑스의 대형 유통점 오샹에선 유러화와 프랑을 둘 다 능숙하게 계산할 수 있도록 출납원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작은 빵집이나 뉴스가판대에서 쉽게 거스름돈을 내주지 못하는 바람에 줄을 길게 늘어선 풍경도 연출될 것이 틀림없다. 자판기에서 코카콜라나 콘돔을 사지 못해서 기계에 화풀이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거리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상생활의 갖가지 영역에서 이른바 유러버그가 등장한다는 뜻이다.

유러화가 유러랜드에서 법적인 화폐로 등장하는 것은 내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 오후 2시가 되면 각국의 화폐들은 환율변동을 멈춘다. 1프랑이 6.6유러가 될지 6.7유러가 될 지는 이때 가봐야 알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 낡은 동전과 지폐들이 새 돈으로 교체되는 시기는 2002년 1월 1일. 유예기간인 3년동안 유러버그를 완전히 극복해야 유럽 시민들은 불편없이 유러화를 사용하게 된다.

유럽은 지금 유러버그와 밀레니엄버그를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파리〓정영태기자〉ytce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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