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과잉학습 부작용]「초독서증」도 병이다

입력 1998-11-29 20:33수정 2009-09-2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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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와 아기의 관계가 교사와 학생의 관계로 변질됐기 때문에 멀쩡한 아이들의 머리가 ‘로보트’가 돼버리는 겁니다. 한국사회에서 늘어나고 있는 ‘유사자폐’는 우리 사회가 빚어낸 사회병이자 문화병입니다.”

프랑스의 언어치료전문가 김양희박사(72·임상심리학)가 최근 4년간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김박사는 프랑스 르왕대병원의 언어병리학과교수로 재직했으며 94년 한국어린이육영회 치료교육연구소 초청으로 내한해 활동하다 29일 프랑스로 돌아갔다.

김박사는 한국의 경우 ‘자폐’ 또는 ‘유사자폐증’으로 분류되는 어린이의 90%는 ‘초독서증(Hyperlexia)’ 환자라고 설명한다. ‘초독서증’은 의미를 전혀 모르면서 한글이나 영어를 기계적으로 ‘발음’하는 현상으로 그동안 자폐의 여러 증상 가운데 하나로 분류돼 왔다. 그러나 김박사는 이 개념을 확대해 뇌가 성숙되지 않은 아이에게 한글 영어 수학을 ‘조건반사식’으로 가르침으로써 생기는 유아정신질환으로 본다.

“초독서증 아이들은 머리가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단어’를 배워 알고 있으면서도 대화할 능력은 없습니다. 어떤 세살 짜리는 영어동화책을 뜻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줄줄이 읽어냈습니다.”

김박사는 한국에서 1천5백여명의 ‘어린이환자’를 상담 치료했다. 10명 중 7명은 부모가 ‘자폐’ 또는 ‘유사자폐’라며 데리고 왔는데 실제로는 그중 1명 정도만 선천적 자폐아였고 나머지는 초독서증이었다는 것. 3세 이하의 아이에게 무리하게 가르치면 그 뒤 초독서증이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선천적자폐는 올초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이 유전자의 결함에 의한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유사자폐는 언어상실 사회성 결여 사물에 대한 과도한 애착 등의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3세 이전 ‘부모의 무관심’이 원인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김박사는 한국의 경우 초독서증 또는 유사자폐증 어린이가 늘어나는 것은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 ‘과도한 교육열’ 때문으로 진단한다. 그는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많은 ‘자폐아’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박사는 찾아온 부모들에게 우선 “언제부터 어떤 교재로 가르쳤느냐”는 질문부터 했다. 처음에는 “따로 공부를 시킨 적이 없다”고 우기다가 거의 예외없이 “매일 영어와 한글을 가르쳤다”고 실토했다는 것.

〈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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