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고객 무시하는 변호사

  • 입력 1998년 11월 11일 19시 16분


변호사들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법률서비스가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다. 변호사에게 소송을 의뢰해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피부로 느꼈던 일일 것이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최근 2년 이내에 민형사소송을 의뢰한 경험자 5백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아도 변호사들의 법률서비스 수준은 확연히 드러난다. 한마디로 고객이 비싼 보수를 지급하면서도 그만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변호사에게 항의 한번 제대로 못하는 것이 우리 법률시장의 실태다.

소비자보호원 조사에 따르면 변호인을 선임하면서 서면계약서를 작성한 경우는 58%에 불과했다. 변호사단체의 보수기준에 대해 변호사측의 사전 설명을 들은 고객은 23%에 불과하고 영수증을 받지못한 경우가 46%에 이른다. 특히 초기에 일시금으로 내는 착수금이 보수총액의 88%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착수금 부담이 클 뿐만 아니라 반환은 어떤 이유로도 불가능하게 돼있어 중도에 변호사를 바꾸고 싶어도 사실상 어렵다. 계약서 모델인 변호사회의 표준계약서 내용을 보면 동등한 입장에서 한 계약으로 인정할 수 없을 정도다. 쌍방의 권리와 의무에 균형을 잃고 있다. 계약해제의 경우도 고객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다.

변호사들의 서비스 수준에 응답자의 72%가 불만을 토로하면서 주요 요인으로 불성실 불친절을 꼽았다. 소송진행 상황을 묻기 전에 알려준 경우도 51%에 불과해 변호사들의 서비스정신이 부족함을 드러냈다. 서비스부족 현상은 아직도 변호사수가 적은데서 오는 법률시장의 과점(寡占)체제와 변호사들의 권위주의적 발상에 큰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사법시험 개혁안을 무시하고 합격자를 5백명선으로 후퇴시키려는 법조계의 시도는 개혁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변호사들의 서비스 수준 향상은 꼭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소비자보호원의 제안대로 계약서 작성과 영수증 교부를 의무화해야한다. 거래명세를 남기는 것은 특히 변호사들의 탈세를 막기 위한 방안도 된다. 착수금의 일시지급방식도 문제가 드러난 만큼 소송진행 단계에 따라 몇차례로 나누어 내는 방식으로 개선을 검토해야 한다.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 표준계약서는 고객의 권리를 대폭 넓히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

아울러 성과급의 의미가 있는 ‘성공보수’계약은 법률서비스의 질을 높인다는 긍정적 측면도 없지 않지만 변호사의 직업윤리 등에 비춰 재고할 여지가 있다. 고객의 일시적 비용부담을 덜기 위해 선진국처럼 법률비용보험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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