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낙연/YS의 「고별」방식

  • 입력 1998년 9월 21일 19시 13분


정계개편과 경제청문회에 대한 김영삼전대통령(YS)의 불만이 얼마 전에 크게 보도됐다. 그것을 보면서 어떤 책을 떠올렸다. 미국인 대학교수 제프리 소넨펠드가 쓴 ‘영웅의 고별(The Hero’s Farewell)’이다. 이 책은 어떤 분야건 정상(頂上)에 오른 인물들의 퇴진방식을 네 가지로 나누었다.

첫째는 군주형(君主型). 물러날 마음이 없다. 죽음이나 결정적 건강악화, 또는 쿠데타가 아니면 좀처럼 물러나지 않는다. 지배기간이 끝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후계자를 키우기보다 자기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려 한다. 정치인으로는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루마니아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유고의 요시프 티토,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 소련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등이다. 경제인에는 미국 석유왕 폴 게티와 금융황제 J P 모건이 있다.

둘째는 장군형(將軍型). 마지못해 물러나지만 그 후에도 영향력을 갖고자 한다. 복권을 획책하는 경우도 있다. 최소한 자기의 ‘위대한’ 업적을 후진들이 영원히 칭송해주기를 열망하며 자기를 기억시킬 만한 기념물을 남기기도 한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사라져갈 뿐이다”고 말한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가 대표적이다. 조지 패튼도 마찬가지다. 정치인으로는 프랑스의 드골이 그랬다.

셋째는 대사형(大使型). 깨끗이 물러나 후임자를 도우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 재임중에 훌륭한 일을 했다고 자족한다. 남들도 자기 업적을 평가해 주리라고 속으로 기대한다. 정치인으로는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전형적이다. 그는 후임 대통령 존 케네디를 도왔고 쿠바위기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케네디도 그것을 고맙게 여겼다. 퇴진하면 먼 발치에서 회사를 돕는 일본 경제인들도 비슷하다.

넷째는 지사형(知事型). 목표지향적으로 일하다가 물러나면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매진한다. 현직에 있으면서 새 행로를 계획하기도 한다. 캐나다 인디언 부족을 12년 동안 이끌다 물러나 62세에 영화배우로 데뷔한 댄 조지가 이런 부류다. 더스틴 호프먼의 ‘작은 거인’에서 인정많고 지혜로운 인디언 노인으로 나온 배우다. 정치인으로는 대통령에서 물러나자 땅콩농장을 다시 경영하며 세계평화를 위해 일하는 미국의 지미 카터가 이에 속할 것이다.

김전대통령이 경제청문회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하고 여당의 의원영입과 ‘민주 대연합론’을 비판했다고 한다. 의견이나 감정의 표현은 그의 자유다. 그러나 청문회에는 자신이 민감하게 관련돼 있다. 경제실패에 대해서는 아직도 그를 원망하는 국민이 많다. 그럼에도 청문회 개최나 그의 출석 여부에는 찬반이 엇갈린다. 그로서는 국회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정도로 말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의원이동과 ‘민주 대연합론’에 대한 비판이 추종세력 동요와 부산―경남에서 차지하는 자기 위상의 약화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되는 것도 거북하다. 그것은 불필요한 의구심만 낳는다. 다른 차원의 이유 때문이었다면 덜 거북했을 것이다. 실현가능성을 충분히 점검하지도 않고 불쑥 ‘대연합’ 운운해 평지풍파를 일으킨 여권의 미숙함과는 별도의 문제다. 김전대통령은 어떤 ‘고별’을 준비하고 있는가.

이낙연<논설위원>naky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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