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수해 키운 지자체

  • 입력 1998년 8월 9일 20시 27분


엄청난 수해(水害)다. 인명피해만도 2백명이 훨씬 넘는다니 일찍이 없던 참화다. 이번 수해는 불가항력적인 재해라고 할 수도 있다. 짧은 시간에 그처럼 많은 비가 쏟아졌으니 어찌 해 볼 도리가 없긴 했다. 그러나 피해가 이렇게 커진 데는 인재(人災)적인 요인도 컸다. 특히 당국과 지자체의 방심 무책임이 수해를 키운 측면이 적지않다.

무엇보다 수도권 북부지역의 수해는 2년전 홍수 때와 똑같은 양상의 되풀이였다. 그때 제기됐던 수방(水防)상의 각종 문제점들이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돼 왔기 때문이다. 소를 잃었으면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하는데 고치는 시늉만 하다가 또 당한 셈이다. 2년전 온갖 수방대책을 발표했던 정부당국과 해당 지자체들은 이제 넋을 잃고 있는 이재민들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서울의 경우도 잘못된 하천관리와 도시계획, 방재에 대한 무관심이 수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전문가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우선 무분별한 하천복개다. 최근 몇년간 서울시와 각 구청은 유행처럼 하천을 마구 복개해왔다. 주차장이나 상가로 활용해 세외수입을 늘린다는 명분이었다. 이렇게 복개된 하천들이 이번 큰비에 자연스러운 물흐름을 막아 피해를 키웠다. 이번에 물에 잠긴 동부간선도로도 그렇다. 이 도로는 홍수시 물흐름에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만든 ‘임시도로’다. 88년 상계 중계 택지개발이 이미 조성된 상태에서 급작스레 도로를 만들자니 보상비가 필요없는 둔치에 교각도 없는 도로를 만들었고 당시 건설교통부는 추후에 교각을 설치하는 조건으로 이를 승인했다는 것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서울시의 무사안일과 안전불감증이다. 감사원은 6월 서울시내 일부 상습침수지역을 재해위험지구로 지정해 장마철 수해에 대비하라는 감사결과를 통보했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재해위험지구로 지정할 경우 주민들이 부동산값이 떨어진다고 반발한다며 해당지역에 대한 조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시는 또 ‘수해발생 예상지역도 거의 없다’는 식으로 안이하게 파악했다는 것이다. 어이없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일부 민선단체장들의 고압적이고 인기위주의 집무태도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적지않다. 과거 임명제 때의 도지사 시장 군수들은 문책을 겁내 각종 안전사고예방에 열심이었으나 민선단체장들은 수방대책 등 눈에 잘 띄지않는 일보다는 생색내는 일에만 주로 매달린다는 지적이 그 한 예다. 재난에 대한 이런 방심과 무책임이 계속되는 한 원시적 인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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