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정훈/재벌式 아들사랑법

  • 입력 1998년 7월 6일 19시 56분


얼마전 아들을 현역으로 군에 보냈다는 한 ‘아버지’가 6일 전화를 걸어왔다.

30대 재벌 총수 아들 중 절반 가량이 ‘병역의무 면제자’라는 동아일보 보도를 읽고 나서 전화한 것이라고 했다.

그분은 입대하는 아들에게 ‘대한민국의 모든 남자들은 군에 다녀와야 한다’는 말로 격려했는데 신문을 보고나니 ‘힘없는 아버지’에 대한 변명을 한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다.

돈과 권력에 가까울수록 국민의 중요한 의무가운데 하나인 병역의무를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우리사회의 한 단면이다.

병무청 모병관이라는 자리에서 청탁을 해결해주고 수십억원대의 돈을 받아 거부가 된 원용수(元龍洙)준위 사건을 통해 우리는 지도층 인사들의 ‘병든’의식을 읽을 수 있다.

‘내아들을 안일하고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고위직 인사들이 드러났다. 군을 지휘하는 장군들도 그 명단에 포함돼 있고 국세청고위간부 대학교수 변호사에 이르기까지 실로 이 사회의 이목을 끌고 존중받는 지도층 인사가 아닐 수 없다.

서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신분이 높을수록 사회적 의무도 무겁게 진다’는‘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전통을 존중해 왔다. 많은 권리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무거운 의무’를 다해야 어려운 시기에 내려지는 그들의 결정이 존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때 입후보자나 가족의 병역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도 바로 초보적인 도덕성과 의무를 지키느냐를 따지는 측면이 아닐까.

재벌총수 아들들의 병역실태는 ‘강제 구조조정’의 시련을 겪고 있는 재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같다.

박정훈<사회부>hun34 @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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