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용정/월드컵의 내일을 위하여…

  • 입력 1998년 6월 29일 19시 53분


98프랑스월드컵이 27일부터 금세기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16강 토너먼트에 돌입했다. 진정한 승부는 바야흐로 이제부터다. 조별 리그전으로 치러진 1라운드와는 달리 16강전부터는 녹다운 방식이다. 어느 팀이고 지면 바로 무대 뒤로 사라지게 된다.

최강의 전력끼리 맞붙는 16강 토너먼트는 단판 ‘진검승부’다. 개인기에다 힘과 스피드를 결합한 기술축구를 구사하는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막강 전력을 자랑하는 팀끼리의 승패는 예측불허다. 그래서 게임마다 축구를 사랑하는 세계인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된다.

아시아지역 출전팀은 모두 1라운드에서 무참하게 탈락했다. 어쩌면 예상했던 결과인지도 모른다. 기량과 전술면에서 상대적 열세인 아시아축구가 세계축구의 새로운 흐름인 기술축구의 위력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한국축구는 이번 대회에서도 1무2패라는 초라한 성적에 그쳤다. 마지막 벨기에전에서 불꽃같은 투혼을 발휘한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국민은 최선을 다해 싸워준 우리 선수들에게 감동했고 또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한국축구의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자위한다. 정말 그런 것인가.

프랑스월드컵은 새삼스레 우리의 축구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 또한번의 실험무대였다. 기본적으로 기량이 부족함을 통감해야 했다. 정신력과 조직력만으로는 세계축구의 높은 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한국축구는 아직도 공격과 수비 모두 허점투성이였다. 공격에선 골 결정력이 문제였고 수비에선 조직적인 지역방어와 커버플레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경기를 읽는 시야도 좁아 볼을 어디로 보내야 할지 허둥대기 일쑤였다. 세계축구의 흐름에 대해서도 둔감했다. 16강에 진출한 강호들은 상대의 수비패턴에 따라 수시로 포메이션과 전술을 바꾸었다. 한국은 그동안 답습해온 양날개를 이용한 측면돌파와 대인(對人)마크에 의존하는 답답한 플레이로 일관했다.

비쇼베츠 전 한국올림픽대표팀 감독은 “새로운 기술축구 도입과 전술의 개발 없이는 축구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것을 우리는 이번 대회를 통해 뼈아프게 실감했다. 개인기 조직력 전술 등의 열세를 그대로 놔두고 투혼만으로 세계정상급 축구를 상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축구는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것은 철저한 자기반성과 성찰 위에서만 가능하다. 오늘의 실패와 좌절이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망각한 채 ‘마녀사냥식’ 희생양 찾기에나 급급한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이루어낼 수 없다.

한국축구의 선진화 세계화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이번 대회기간중 세계 축구계의 주목을 받은 일본을 눈여겨보자. 장기간에 걸친 축구인프라 투자와 문화환경 조성이 오늘의 일본축구를 일구었다. 프로축구의 활성화, 전용구장 건설 등의 기반시설 확충, 유소년 선수들의 해외유학, 축구의 생활화를 통한 저변확대 없이는 한국축구의 미래는 없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국민의 변함없는 성원이다.

4년 후면 다시 월드컵이 열린다. 새로운 세기의 새벽을 여는 2002년 월드컵은 한국과 일본이 공동주최한다. 그때에도 이번처럼 ‘놀라운 일본, 실망스러운 한국’이라는 평가에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김용정<논설위원>yjeong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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