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편지]원화자/실직한 큰 오빠에게

입력 1998-05-18 06:57수정 2009-09-25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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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에게 참 오랜만에 편지를 써보는 같아. 그래서 왠지 어색한 기분이 들기도 해.

오빠는 언니나 작은 오빠보다 훨씬 자상했어. 막내라며 나를 무척이나 아껴줬지. 초등학교와 중학교 다닐 때 불안했던지 늘 자전거 뒷자리에 나를 태우고는 30분 가량 두런두런 얘기를 해 주며 학교 정문앞까지 공주처럼 ‘모셔다’ 주었잖아.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며 행복감에 젖어들기도 해.

나는 오빠에 대한 기억이 참 많아. 그래서였나. 오빠가 군에 입대할 때는 제대로 작별 인사도 못하고 30분이나 울먹이며 학교에 가야 했었지. 군에 있을 땐 사흘이 멀다하고 편지를 보내 아마 오빠의 여자친구보다 많이 보내지 않았을까 싶어.

그렇게 자상했던 오빠가 이젠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어버이날이 되면 한쪽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예쁜 정은이 아빠로 변해 있다니 세월이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을 새삼스레 실감하고 있어.

그런데 IMF는 착실하고 책임감있던 오빠에게도 예외없이 불어닥쳤어. 오빠가 다니던 회사는 부도위기에 처하고 오빠는 실직자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고…. 그래도 주위 사람들에겐 늘 웃으며 자신만이 아닌 모든 사람이 어려우니 다같이 힘을 내자는 꿋꿋함에 한편으론 믿음직하면서도 막내동생은 왜그리 속이 상한지 모르겠어.

요즘에는 정은이 재롱에 그나마 웃으면서 힘든 내색을 전혀 하지 않는 오빠를 보면 괜히 화가 나고 오빠의 그런 모습이 싫어질 때도 있어. 이젠 그렇게 모든 짐을 혼자 짊어 지려 하지 마. 너무 무겁잖아. 힘들면 힘들다고 표현도 좀 하고.

오빠. 이참에 그동안 못잤던 잠도 실컷 자고 오빠가 좋아하는 낚시터에도 다녀 와. 알았지.

원화자(대전 대덕구 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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