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구조조정 부작용 적게…

동아일보 입력 1998-05-14 19:27수정 2009-09-25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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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기업 살생부(殺生簿)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주식시장은 맥없이 주저앉고 환율은 다시 불안하다. 자금시장에서는 금융기관들의 대출금 회수가 본격화하면서 기업들이 부도위기에 떨고 있다. 개별기업들의 외자유치, 자산매각 협상도 주춤거린다. 이같은 현상은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앞두고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전반적인 금융동향은 지난해 제1차 외환위기 때와 유사한 파동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구조조정의 대가라 해도 너무 심각하다.

기업 구조조정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인 것은 틀림없다. 그것도 신속하고 단호하게 이뤄져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부실기업의 정리없이는 금융부실을 막을 수 없고 자금의 효율적 배분도 기대할 수가 없다. 끝내는 금융과 실물이 공멸하는 더 큰 위기상황을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부실기업 강제퇴출이 몰고 올 파장과 부작용에 대한 사전대비가 너무 소홀했다. 추진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구조조정의 큰 밑그림도, 단계적 전략도, 구체적인 개혁프로그램도 없이 뒤늦게 기업만 다그치다보니 불필요한 혼란과 부작용을 증폭시키고 있다.

금융과 기업의 구조개혁이 지지부진했던 데는 정부 탓이 더 컸다. 6·4지방선거를 의식한 나머지 정치와 경제논리가 뒤섞여 구조조정과 실업대책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가리지 못했다. 금융과 기업 구조조정도 선후가 뒤바뀌었다. 은행을 통해 기업구조조정을 추진하려면 마땅히 금융개혁이 먼저여야 했다.

기업 살생부 파문만 해도 졸속행정이 낳은 부작용이다. 기업구조개혁이 시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달말까지 부실기업을 가려 도태시키겠다는 대통령의 언급 한마디에 죽일 기업과 살릴 기업을 가리는 작업에 조급하게 착수한 듯한 느낌이다. 부실기업 판정의 일관된 기준이나 제도적 기반조성, 부작용에 대한 안전판 같은 것을 사전에 깊이 검토했는지 의심스럽다.

기업구조조정이 아무리 시급한 과제라 해도 무턱대고 밀어붙이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부실기업정리를 합리적으로 하려면 기업퇴출 시스템을 새로 만들고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래야만 기업퇴출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퇴출 자체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구조개혁이 본격화하면 기업은 물론 금융권의 자금사정은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무엇보다 구조조정에 필요한 재원 마련과 구조조정 후의 자금대책을 미리 세워놓지 않으면 멀쩡한 기업까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구조조정은 기본적으로 죽일 기업보다 살릴 기업쪽에 초점을 맞추어 추진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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