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구 칼럼]방향이 틀렸다

  • 입력 1998년 5월 8일 19시 39분


환란(換亂)책임을 둘러싼 여야의 힘겨루기가 가파르다. 경제파탄 원인규명의 본질은 어디 가고 핵심을 벗어난 ‘네탓’공방만 갈수록 어지럽다. 도대체 이런 당리당략 싸움으로 무얼 규명하겠다는 것인지 답답하다. 정치권은 지금 실체적 진실규명에 관심들이나 있는지, 겨냥하는 바가 무언지 의심스럽다. 국민은 결코 이런 식의 ‘진상규명’을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 換亂 원인규명은 뒷전 ▼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과 임창열(林昌烈)전경제부총리의 공방만 해도 그렇다.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곁가지다. 임씨가 그 당시 IMF로 간다는 사실을 알았건 몰랐건 그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그때는 IMF로 가게 돼 있었던 시점이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전정권의 대통령과 경제총수가 안면몰수하고 치고받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그렇다고 검찰이나 여권이 자꾸 임씨를 두둔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것도 모양이 안좋기는 마찬가지다. 여당의 경기도지사후보라 보호망을 치는지는 몰라도 그러다가 만약에 임씨의 거짓말로 드러난다면 그 낭패를 어찌할 것인가.

온 국민을 고통 속에 몰아넣은 환란의 원인과 책임소재를 차제에 반드시 가리고 넘어가야 한다는 데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대관절 무슨 연유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됐기에 이런 엄청난 국가적 위기가 초래됐는지, 그것을 철저히 따져보고 그럼으로써 다시는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교훈으로 삼자는 데는 모두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총체적 위기인 만큼 원인도 복합적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개발독재시절부터 누적돼온 적폐와 비리, 변화의 옷을 제때에 갈아입지 못하고 낡은 틀 속에 갇혀 희희낙락해온 무사안일과 자만, 거기에다 국가위기관리능력 빈곤과 정책상의 잇단 오류가 어우러져 빚어낸 결과가 오늘의 이 난국이다. 일차방정식 풀듯 쉽게 가닥을 잡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치적 논리와 법의 잣대부터 들이대는 데 문제가 있다. 접근 방법과 순서가 틀렸다.

검찰수사와 청문회를 둘 다 동원할 생각이라면 당연히 청문회를 먼저 여는 것이 순서다. 그런 다음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대목이 발견된다면 검찰에 넘겨 사법적 처리로 매듭지으면 된다. 그럼에도 서둘러 검찰권부터 발동한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검찰수사는 기본적으로 형사소추권행사를 전제로 한다. 때문에 행위의 범죄구성 여부에 수사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환란의 원인에는 위법 탈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책판단의 잘못이 크다. 검찰력으로 이런 법 이전의 복합적이고도 총체적인 원인까지 모두 종합적으로 규명하고 척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정책판단 잘못에 직무유기죄를 적용하려면 은폐나 의도적인 회피 등 고의성이 입증돼야 한다. 여의치 않으면 개인비리로라도 우선 잡아넣고 보자는 식이면 정도(正道)가 아니다. 또 일단 미진한 채로 법원에 넘겨 사법부 판단에 맡기겠다는 자세라면 온당한 소추권행사로 보기 어렵다.

▼ 검찰권발동 공정해야 ▼

이래 가지고는 국민이 바라는 환란의 철저한 원인규명은 어림없다. 헛말일 뿐이다. 검찰권 발동이 정계개편이나 선거를 겨냥한 여권의 정치적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당당하지 못하다. 선거의 호재 악재를 저울질하며 사사건건 물고늘어지는 야당도 한심하다. 어느모로 보나 지금 진상규명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선거전략 차원의 이슈로 전락한지 오래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청문회를 열 모양이지만 지금같은 대결구도라면 그것도 기대할 것이 못된다. 결론없는 치고받기로 문제만 오히려 더 복잡하게 만들어 놓을 게 뻔하다. 그 통에 나랏일은 언제 하며 경제는 또 누가 살릴 것인지 안타깝다. 정치가 이래서는 안된다. 환란은 정치적 힘겨루기나 도박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남중구(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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