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컴퓨터 해커

  • 입력 1998년 4월 13일 19시 40분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은 재주만 있으면 귀천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을 식객으로 대접했다. 하도 대접을 후하게 하다보니 그 중에는 도둑질 잘하는 사람도 있었다. 맹상군이 진(秦)나라에 갔다 잡혀 죽게 됐을 때 도둑질 잘하는 신하가 진왕에게 선물했던 여우가죽 옷을 훔쳐내 진왕의 애첩에게 선물, 위기를 모면한 일화는 사기(史記)에도 실려있는 고사다.

▼맹상군을 흉내낸 것은 아니겠지만 청와대 소속의 기획예산위원회가 한 유명한 컴퓨터 해커출신을 사무관급 공무원으로 특채할 계획이어서 화제다. 그는 5년 전 시중은행의 휴면계좌를 한 곳으로 빼돌리기 위해 청와대의 통신비밀번호를 알아내려다 실패,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바 있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그를 대기업에서 컴퓨터 전문가로 스카우트할 때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타인의 컴퓨터에 무단침입하는 해킹행위는 종종 컴퓨터 조작기술을 과시하기 위한 ‘장난’쯤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컴퓨터보급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해커의 연령층이 낮아져 10대들의 호기심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도 있다. 미국 국방부 컴퓨터망이 영국의 한 청소년 해커에 의해 뚫렸을 때도 매스컴은 범죄행위보다 ‘천재성’에 더 관심을 두고 보도했다. 그러나 책도둑도 도둑인 것처럼 해커도 도둑이다.

▼정부가 해커출신을 공무원으로 임용하면서 이를 공개한 것은 청소년 해커들을 부추기는 꼴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해커는 50년대 초반 컴퓨터정보의 공유와 인간생활의 향상을 목표로 미국 MIT대의 컴퓨터광들이 만든 서클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젊은 컴퓨터광들의 창조적 에너지가 해킹보다 인간의 삶의 질 향상에 쓰이도록 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임연철<논설위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