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활/「일본식 경영」의 변모

  • 입력 1998년 3월 27일 19시 26분


70년대말 미국 하버드대 에즈라 보겔교수는 ‘저팬 이즈 넘버 원’이라는 저서에서 일본을 일등국가로 만드는데 공헌한 일본특유의 인사노무관행으로 종신고용제 집단주의 복지확충 등과 함께 연공서열제를 꼽았다.

그는 “장래의 번영을 바라는 미국인은 어디까지나 일본을 보고 배워야 한다”고까지 역설했다.

‘일본 컴퓨터의 기수’로 불리는 후지쓰(富士通)사가 10월부터 연공서열위주의 임금 및 인사체계를 폐지하고 성과주의를 채택키로 했다는 뉴스는 일본재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이는 근로자를 아끼는 경영인, 충성심과 헌신으로 무장한 근로자가 멋지게 결합해 빚어냈던 일본적 경영의 신화가 무너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패전의 폐허에서 일어나 세계2위의 경제대국을 가꾸기까지 에도(江戶)시대 이래의 ‘오야분(親分)’ ‘고분(子分)’관계를 기초로 한 일본식 노사관계가 크게 기여했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았다.

서양인의 눈으로 보면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일본적 경영이 일본산업의 활력과 생산성을 낳은 요체였다는 것.

그러나 저성장 극한경쟁의 정보화시대로 접어들면서 이같은 관행은 점차 경쟁력 강화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사정이 어려워도 감원보다는 근무시간 단축을 택했던 재계는 ‘도산이냐, 감원이냐’의 냉혹한 현실에 맞닥뜨리자 ‘일본적 경영의 포기’에 나서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일본사회에도 고통과 불안을 준다. 특히 효율지상주의는 인간관계의 황폐화와 헌신성의 저하를 가져오리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구조조정의 태풍 속에 있는 한국에도 일본의 변화와 고민은 남의 일 같지 않다.

권순활<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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