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68)

  • 입력 1998년 3월 16일 07시 27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136〉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자 검은 옷의 사내와 오빠는 사원 뒤편 별실로 가 손발을 씻고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사뭇 무거운 표정으로 식사를 하고 있던 오빠가 물었습니다.

“전염병이 언제까지나 계속될까요?”

그러자 검은 옷의 사내는 말했습니다.

“그걸 누가 알겠소?”

“대체 무슨 병이라고 합디까?”

“그걸 누가 알겠소?”

“당신은 이 도시에 온 지 얼마나 됐소?”

“오늘로 꼭 오십 일이 됐소.”

“그런데 이상하지 않소? 오십 일이나 이 도시에 살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아직 감염되지 않았을까요?”

“글쎄요. 그걸 누가 알겠소?”

식사가 끝나자 두 사람은 몹시 지쳐 있었으므로 바닥에 쓰러져 잤습니다.

날이 밝자 두 사람은 일어나 새벽 기도를 드린 뒤 다시 일터로 나갔습니다. 검은 옷의 사내는 매장소로 가고 오빠는 시체들을 수거해 오기 위하여 시내로 갔습니다. 그날도 두 사람은 하루 종일 일했습니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지자 돌아와 씻고 잤습니다.

검은 옷의 사내를 도와 시체를 매장하는 일을 하는 동안 이십 일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에 오빠는 수많은 시체를 매장소로 옮겨갔습니다. 죽어도 별로 아깝지 않을 나이의 노인 시체, 태어난 지 일 년도 안된 어린 아이, 더없이 잘 생긴 젊은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처녀의 시체를 오빠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실어 날라야 했습니다. 오빠가 실어온 그 시체들을 검은 옷의 사내는 말없이 받아 매장했습니다.

이렇게 함께 일하는 동안 오빠는 검은 옷의 사내를 몹시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내는 과묵하여 말이 없기는 하지만 믿음직스러웠고, 행동거지에는 어딘지 모르게 성자의 기품이 흐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 그 검은 옷의 사내 또한 오빠를 마음속 깊이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유약해 보이기만 하던 첫인상과는 달리 함께 일을 해 보니 여간 성실하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비록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친형제처럼 가까워졌습니다.

그런데 오빠가 그 도시에 와 일을 하기 시작하고 꼭 이십 일째가 되던 날 아침이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보니 오빠는 코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몸에는 심한 열이 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지난 이십 일 동안 과로를 해서 그렇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검은 옷의 사내는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오빠를 굽어보며 말했습니다.

“형제여! 오늘은 나 혼자 나갈 테니 그대는 쉬도록 하라.”

그러자 오빠는 말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어요. 당신 혼자서는 도저히 그 많은 시체들을 다 매장할 수 없을 거요.”

오빠가 이렇게 말하자 검은 옷의 사내는 딱하다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공연한 고집을 부릴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마시오.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형제여, 이제 머지않은 장래에 나는 내 손으로 그대의 시체를 묻어야 할 것 같소. 왜냐하면 그대마저도 전염병에 감염된 것 같으니 말이오.”

이 말을 들은 오빠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상대를 쳐다보았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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