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창]이한철/하루를 이틀로 사는 그리스인

  • 입력 1998년 2월 26일 10시 15분


그리스에서는 하루생활을 오전8시에 시작해 오후2시면 일단 끝을 맺는다. 공공기관의 하루는 여기서 끝난다. 오후3시에서 5시까지 그리스인들은 낮잠을 잔다. 대신 오후 5시부터 상점이 다시 문을 여는 등 두번째 하루가 시작된다. 이는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유난히 긴 불볕 더위를 피하기 위해 그리스인이 나름대로 터득한 지혜의 산물이다. 이곳에선 오전1시 이후에는 시끄럽게 떠들어도 뭐라하는 사람이 없지만 오후 취침시간 중에는 절대 금물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직장을 두군데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공공기관에 다니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한다. 오후2시 이후는 자유시간인 점을 활용한 것으로 그야말로 하루를 이틀 삼아 살아가는 셈이다. 아테네의 러시아워는 이에 따라 하루에 두번이 아니라 네번이 되고 홀짝 순번제를 시행함에도 불구하고 하루종일 교통사정이 좋지않다. 저녁약속은 이곳에서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것 중의 하나이다. 보통 저녁식사를 9시나 10시에 하는 이곳 사람들은 식사약속도 대개 그 시간에 잡기 때문에 생활리듬이 안맞는 우리에겐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쇼핑하는 것도 쉽지 않다. 상점들은 월 수 토요일은 오후3시에 문을 닫으면 더이상 열지 않고 화 목 금요일에는 오후5시부터 다시 문을 연다. 필자도 한동안 이에 익숙지못해 허탕친 경우가 많았고 아직도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 아울러 공공요금은 우체국에서 현금으로 내야 하고 레스토랑도 카드를 받지 않는 곳이 많아 주머니에 항상 어느 정도의 현금을 갖고 다녀야 안심이 되는 것이 이곳 생활이다. 그리스인들이 언제부터 하루를 이틀로 살게 된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하루가 중간에 단절되다 보니 매사에 너무 느긋한 것 같다. 이곳에 도착해서 배운 첫 그리스 단어도 ‘천천히’라는 뜻의 ‘시가시가’이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국토면적이 남한의 크기만하고 인구는 4분의1에 불과한 그리스. 하지만 지중해성 기후라는 천혜의 자연조건 그리고 비록 폐허화되기는 했으나 찬란했던 고대 문화유산을 물려받은 덕택으로 오늘날 이들은 먹고 사는 것에 대한 큰 걱정없이 현재의 생활을 즐기고 있다. 이한철(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아테네무역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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