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재호/망신스러운 美의 「한국不信」

  • 입력 1998년 1월 3일 20시 28분


정초부터 낯을 뜨겁게 만드는 기사가 실렸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2일 한국 회계업무의 부정확성을 지적하는 특집기사를 1면에 실었다. ‘진실을 말해야 할 필요 때문에 미국 공인회계사 수험준비가 붐을 이루고 있다’는 부제와 함께. 얘기는 이렇다. “국제통화기금(IMF)시대가 한국 기업들에 요구하는 것은 투명성이다. 투명성의 척도는 회계다. 한국 기업들은 이제 정직하지 못한 회계에 의존할 수 없게 됐다. 제2, 제3의 비밀장부를 만들 수 없게 된 것이다. 앞으로는 진실만을 기록할 새로운 회계사가 필요하다. 한국에도 잘 훈련된 공인회계사들이 많지만 이들로는 안된다. 한국의 회계사시험은 훌륭하지만 국제 기준으로 인정받는 미국 회계사시험의 엄격한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요즘 서울에는 미국공인회계사 자격을 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이를 위한 학원도 인기가 높다….” IMF시대, 구조조정이고 개혁이고 할 것 없이 기업의 회계부터 정직하게 하라는 준열한 충고인 셈인데 창피하기 이를데 없다. 기사는 한술 더 뜬다.“앞으로 몇년간은 이런 종류의 학원(미회계사 수험준비 학원)들이 매우 잘될 것이다”라는 스티븐 보스워스 주한(駐韓)미국대사의 코멘트까지 덧붙였다. 주한미국대사가 이런 문제에 대해 그런 식의 코멘트를 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이 한마디는 기사의 백미(白眉)였다. 보스워스의 코멘트는 계속된다. “IMF 프로그램의 일환으로서나, 또는 한국인들의 이익을 위해서나 한국인들은 기업관리(회계)를 국제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부끄러움과 분노 속에서 다시 확인하는 것은 한국과 기업, 개인에 대한 국제사회의 현주소다. 총체적인 불신이다. 지난 연말 금융대란 속에서 이미 경험했지만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신뢰는 이 수준이다. 오죽하면 “한국정부가 내놓은 통계는 모조리 믿을 수 없다”는 ‘폭언’까지 나왔을까. IMF시대의 위기 극복은 확실히 신뢰회복이 그 첫걸음이다. 이재호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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