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1997년의 충격과 교훈

  • 입력 1997년 12월 30일 19시 53분


부끄러운 한해가 저문다. 우리는 지금 겨울바람 차가운 황야에 서서 참담한 심정으로 이 한해가 기우는 것을 보고 있다. 월력(月曆)은 이렇게 한해를 마감하지만 우리의 회한(悔恨)에는 획이 없다. 다시 떠올리게 될까 두려운 최악의 한해였다. 국가가 부도위기에 몰리고 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를 불러들인 낭패감은 어떤 수사로도 표현하기 어렵다. 그러나 누구를 원망하랴. 그 원초적 책임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너무 일찍 터뜨렸던 샴페인에 취해 염통에 쉬스는 줄 몰랐던 오만과 환각, 개방과 변혁이 요구되는 시대 앞에서 구태의연했던 국가경영방식, 내실보다 외양에 치우쳐 빚더미 위에서도 한없이 벌이기에만 열중했던 기업감각, 이 모든 「못남」에 대한 자괴(自愧)가 있을 따름이다. 1997 정축년(丁丑年)은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다. 여당 독주의 노동관계법 날치기통과가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총파업으로 경제가 멍든 끝에 노동관계법을 다시 고친 기록은 그 이후 이어진 정국혼미의 서막이었다. 우리 정치권은 그로써 권위와 신뢰를 잃고 대선의 소용돌이에 일찍이 휘말려들어 국정을 제대로 챙길 능력을 잃었다. 한보 부도는 그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검찰수사와 국회청문회가 요란하게 이어지는 과정에서 한보사태의 불길은 정치권과 정부의 신뢰를 모조리 불살랐다. 무모한 산업정책과 정경유착의 실상,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의 국정농단, 그 폐해끝에 현직대통령 아들의 구속으로 이어진 한보사건은 국정의 중심을 흔들고 정부를 무기력에 빠뜨렸다. 그 이후의 국정표류가 연말 국가부도위기와 관련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 뒤 꼬리를 이은 대기업의 부도는 국가경제의 위험을 알리는 분명한 암시였다. 그러나 기아그룹이 부도나고 그 처리에 시간을 끌기까지 누구 하나 국가경제의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던 것을 우리 모두의 무능 탓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억울하다. 대기업의 잇단 부도로 은행마저 함께 부실해졌다. 그것이 한국 금융산업의 대외신용을 실추시켜 외화차입길마저 끊기고 마침내 외화부도직전의 벼랑끝에 몰렸던 수치를 잊어서는 안된다. 이 한해를 보내며 우리가 간직할 것이 있다면 오직 하나 참담한 실패감과 뼈아픈 반성일 것이다. 경제의 신탁통치에 비유되는 IMF관리체제가 시작되고 1차 구제자금이 들어온 상황에서도 한국인의 신뢰성이 한때 문제되었던 사실에서도 우리는 교훈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 한해의 수모를 새해의 자양으로 삼아야 한다. 정축년은 저물지만 고통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우리가 이대로 주저앉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