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장하성/특단조치 없는 YS담화

  • 입력 1997년 12월 11일 19시 59분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오랜 침묵을 깨고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대통령이 오늘의 금융시장의 급박한 위기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를 의심케 하는 안타까운 것이었다. 자금을 구하지 못해 하루 하루 피를 말리는 절박한 상황에 있는 기업들에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대통령의 사과와 위기극복의 의지가 아니다. 모두가 목마르게 기다리는 것은 공황 직전의 상황에까지 이른 금융시장을 회생시킬 특단의 조치다. ▼ 지금 사과나 들을 땐가 ▼ 지금 은행들이 돈을 쌓아두고 있는데도 멀쩡한 기업들이 자금을 구하지 못해서 부도가 나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다른 금융기관들에조차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는다. 하물며 기업들에 돈을 빌려줄 리 만무하다. 정부는 종합금융사의 영업을 정지하면서 기업의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은행들에 기업어음 할인을 허용했다. 그 말을 믿고 은행에 어음을 들고 가도 돈을 주지 않는다. 은행이 지급을 보증한 회사채의 금리가 이미 법정 상한선인 25%를 넘어섰고 중소기업들은 금리 금액 기간에 불문하고 자금을 구하려 해도 돈을 주는 금융기관들은 없다. 외환시장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 수혈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연일 상한가를 치고 개장 직후 수분만에 거래가 정지되는 시장 실패의 상황에 와 있다. 그리고 수출을 하고도 대금 결제를 받을 수 없어 수출업체와 하청제조업체들이 연쇄부도의 위기에 몰려 있다. 지금의 금융시장은 아무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극단의 신용공황 상태에 이르러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금융시장이 언제 금융공황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긴박한 시장실패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긴급명령을 발동할 의사가 있는지를 묻는 기자에게 대통령은 『국회가 회기 중인데 긴급명령을 발동할 수 있는가. 그것은 헌법을 모르는 소리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렇게 한가한 때가 아니다. 노동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국회가 새벽에 열린 적도 있지 않았던가. 대통령은 비상조치를 취해 정부보증의 힘으로 막힌 돈의 흐름을 뚫어야 한다. 은행들이 책임을 피하기 위해 묶어두고 있는 자금과 일부 기업들이 혼자만 살겠다고 움켜쥐고 있는 달러를 풀게 해야 한다. 그래서 손해가 나고 부실채권이 발생한다면 정부가 변제해주면 되는 것이다. 지금도 기업들이 망해서 은행들이 떠안게 된 부실채권을 국민이 세금으로 메워주고 있지 않는가. 기업들이 망하고 국가경제가 무너진 뒤에 부실채권을 인수해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부실채권을 인수해줄 국민의 세금을 담보로 하여 금융기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자금난으로 쓰러지는 기업을 일으켜 세우도록 하는 것이 국가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 정치권 위기 인식 먼저 ▼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3당 대통령 후보들은 모두 국민에게 국가경제를 구하겠다고 약속해 왔다. 지금이 바로 그 약속을 지킬 때다. 오늘의 한국경제는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할 때까지기다릴 수 없는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위기에 대한 대통령과 정책당국의 책임을 묻는 것은나중의 문제다. 오늘이라도 긴급명령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모두가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어느 후보라도 당장의 당선에 눈이 어두워 국가경제를 구하는 일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취임 직후에 곧바로 청문회에 나와야 할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김대통령이 우리 국민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봉사는 오늘의 금융위기를 바로 보고 결단의 조치를 취해주는 것이다. 장하성<고려대교수·경영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