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IMF의 재벌해체론

  • 입력 1997년 12월 3일 19시 48분


마침내 재벌이 수술대에 올랐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자금지원 조건으로 재벌의 과다차입을 해소하고 상호지급보증 및 계열사간 분리재무제표의 조기개선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IMF의 이같은 요구는 재벌들의 독단적 기업지배구조, 과다한 차입경영이 한국의 금융 외환위기를 불렀다는 진단과 분석에 따른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재벌의 해체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IMF 재벌해체론의 진의가 무엇이고 그 수준이 어디까지인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재벌의 기업지배구조를 개혁하고 경영 패러다임을 외형성장에서 내실위주로 바꾸라는 주문일 수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재벌기업에 대한 미국기업들의 견제음모가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과 유럽등이 줄곧 한국의 자동차 반도체 조선업종 등의 과잉설비를 문제삼아왔고 그들 기업도 동구권 시장등에서 한국기업의 공격적인 경영에 고전을 면치 못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IMF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재벌의 개혁과 수술은 불가피하다. 지난 30년간 재벌이 한국 경제성장의 주역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 지금의 국가경제위기를 부른 것도 재벌 탓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에 따른 폐해는 그동안 수없이 거론돼 왔고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재계의 강력한 반발과 로비에 부닥쳐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재벌의 독단적 기업지배구조와 선단식 경영체제, 과다한 차입경영은 더 이상 능률적이지도 않고 국민경제 전체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 스스로도 구조개선을 위한 비상한 자구노력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재벌에 모든 것을 맡겨놓을 수는 없다. 정부가 새로운 재벌정책을 내놓고 경쟁력이 떨어진 재벌의 기업구조를 과감히 개혁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 방향은 자명하다. 경제력 집중억제를 위해서는 계열사간 상호출자와 채무보증을 엄격히 제한해야한다. 부당내부거래 등으로 부실계열사를 무단 지원하는 관행에도 쐐기를 박아야 한다. 문어발식 경영과 빚더미 경영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오너 중심의 독단적 경영체제에 대한 견제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소액주주의 권익보호와 경영참가를 가능케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전문경영인 체제, 경영투명성 제고를 위한 결합재무제표 작성 의무화, 사외이사제도 도입도 빼놓을 수 없다. 독과점적 시장지배를 막기 위해 불공정 경쟁에 대한 규제도 강화해야 한다. 재벌의 구조적 모순과 폐해가 제거되지 않고는 국민경제의 회생은 기대할 수 없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