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박권상/잘못된 정부선택의 대가

  • 입력 1997년 12월 3일 19시 47분


2일 오전8시반 열린 국무회의는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합의각서를 의결하려 했으나 IMF 총재의 전화 한통으로 본 의제가 기각되고 10여분간의 간담회로 썰렁하게 끝냈다는 보도, 실로 치욕스런 해프닝이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외환위기로 이제 우리는 경제주권을 잃고 한국경제는 IMF의 신탁통치에 들어갔다는 통한의 소리가 메아리친다. IMF와의 합의각서가 국무회의에서 의결되기도 전에 IMF요구로 9개 종금사가 문을 닫았다. 환율은 한달만에 30%가 뛰었고 정부보유외환이 사실상 바닥났으니 말이 「협상」이지 금전을 대주겠다는 IMF측의 말을 안들어 줄 수 없다. 너나 할 것 없이 뼈를 깎는 아픔을 참고 견뎌야하는 고난의 시대가 막이 오른 것이다. ▼ 고통과 치욕의 행진 ▼ IMF의 지시에 따라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정하고 새해 예산도 다시 짜고 재벌의 전횡을 막고 금융기관도 통폐합해야하는 현실 모두 절실한 구조개혁이지만 남의 힘으로 이루는 이런 수모를 마다할 수 없다.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이제 모두 힘을 합해 나라를 살려야 한다. 그러나 국가경영의 책임이 정부에 있는데 나라를 이 꼴 이 모양으로 만든 정부가 3개월도 안남은 짧은, 그러나 사활이 걸린 기간에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한보사태가 터졌을때 이미 경제파탄은 예견되었고 오늘에야 외압으로 시작되는 구조개혁을 6개월전만 서둘렀던들 파탄은 막을 수 있었다고 외국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나 불과 한달전만 해도 정부는 외국 언론이 우리 정부가 발표한 외환보유고를 믿지 않고 왜곡 편파 보도한다고 격앙했고 IMF 구제금융을 받지 않겠다고 큰소리쳤다. 모두 거짓말이었다.1인당 1만달러 소득은 사실상 7천달러 소득으로 폭락하였다. 실업자 홍수, 물가고 등 고통의 행진은 이제 시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부 스스로 진정으로 뉘우치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지난 달까지 정부정책을 뒷받침해오던 신한국당이 한나라당으로 간판을 바꾸어 집권여당의 책임과 역할을 포기함으로써 국회의 뒷받침없이 공중에 떠있는 약체정부가 되었다. 무엇보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데도 용기있게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 이번엔 제대로 뽑아보자 ▼ 결국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를 선택했던 우리 국민 스스로가 책임질 수밖에 없다. 오래전부터 투표를 잘못한 「손가락을 잘라야 한다」는 자조의 소리가 나돌았듯이 오늘의 처참한 사태 역시 따지자면 우리 국민이 스스로 저지른 업보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얼마 안가 우리는 투표장에 가서 대통령을 뽑는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권위주의적 전통과 헌법에 따라 제왕적 권한을 행사한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세종대왕이 될 수도 있고 연산군이 될 수도 있는 자리다. 그런 제도가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나 이상에 합치하느냐는 차치하고 현실적으로는 우선 현명한 선택으로 유능한 입헌군주를 뽑는 것이다. 이미 대통령의 선택기준에 관해서는 후보의 도덕심 경륜과 식견 정치적 능력 특히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덕성 등 귀가 닳도록 들어왔다. 문제는 평균치 유권자들의 지적인 판단능력이다. 어느 후보가 그런 기준을 갖추고 있는지, 그런 후보가 없는 경우 누가 상대적으로 보다 나은지, 아니 덜 나쁜지 등을 식별할 안목이 있느냐이다. 거기에뉨立 그런 판단을 개인의 연고, 지역적인 감정 등 소승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가적 차원에서 정직하게 투표하는 도덕적 용기가 있느냐에 있다. 보수주의의 원조이자 위대한 정치사상가 에드먼드 버크의 충고다. 「유덕한 인민은 부패한 국회를 선출하지 아니하고 비열하고 사려없는 인민은 선하고 능력있는 정부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 고금의 통칙이다」. 박권상(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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