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다시 시작이다

  • 입력 1997년 11월 23일 19시 53분


잔치는 끝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자랑하고 세계 11위 교역국임에 안위(安慰)하던 허세(虛勢)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국제통화기금(IMF)에 응급수혈을 요청한 것으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수치스럽게 추락했다. 한 때의 잔치분위기는 그러나 환각이었을 뿐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본 모습이다. 처음 시작하던 마음으로 다시 국가를 튼튼하게 일으켜 세우겠다는 동참의지와 역할분담이 급하다. 지금의 위기는 우리의 실체가 총체적으로 부실한 데서 비롯했다. 대통령선거에 온 정력을 탕진해온 정치권, 국정운영에 무능과 무책임을 드러낸 정권과 정책관료, 2년여의 불황을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허약한 산업체질이 끝내 위기를 불렀다. IMF의 긴급구제금융은 단기유동성부족을 메우고 대외신용을 회복하는데 잠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국가경제의 허약체질이 근본적으로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하찮게 자존심을 운위할 상황이 아니다. 모든 주체가 자기 책임을 반성하고 구조조정과 경쟁력확보를 위해 분담할 역할을 적극적으로 찾지 않고서는 이 수모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다. 정부는 그동안 한보와 기아사태를 수습하는데 실패를 거듭했다. 부도도미노와 금융권의 부실화, 대외신용 추락과 단기외화부족으로 이어진 지금의 외환위기는 1차적으로 현정권과 정부 탓이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뒤늦게 국민에게 송구하다고 사과했지만 그것으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정책을 수습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데 남은 임기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정부는 우선 IMF구제금융의 도입조건을 되도록 유리하게 협상해야 한다. 그러나 IMF의 요구가 없어도 경쟁력회복을 위한 경제구조조정은 우리 스스로도 해야할 일들이다. 우리 일정과 IMF의 요구를 조율할 필요는 있으되 큰 방향에서 우선 정부의 내핍 의무를 회피해서는 안된다. 정부가 뼈를 깎는 결의를 보이지 않고서는 모든 경제주체의 동참을 이끌어낼 수 없다. 정치권 또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대선싸움에 몰두한 나머지 시간을 다투는 금융개혁법안 처리를 끝내 외면한 우리 정치권이다. 난국극복의 2차적 책임은 기업들에 있다. 우리 기업들은 그동안 차입에 의존한 확장경영으로 부실을 키워왔다. 그러나 이제 과감하고 발빠른 자기정리가 불가피하다. 정경유착의 미몽에서 깨어나 치열한 국제경쟁을 이겨낼 강한 체질을 만들어가야 한다. 기업이 군살빼기와 홀로서기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기업 자신은 물론 국가경제의 회생과 재도약은 불가능하다. 위기극복 과정에서 국민이 떠맡게 될 고통은 엄청날 것이다. 기업의 구조조정은 실업과 임금소득감소를 불가피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아픔을 감내하고 위기극복에 동참하지 않고서는 진정 풍요한 앞날을 기약할 수 없다. 호화로운 해외여행이나 사치 낭비는 삼가야 한다. 어린이들의 1달러바꾸기 같은 작은 일에서부터 역할을 찾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거시지표로 볼 때 우리에게는 잠재력이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우리가 이대로 주저 앉아 웃음거리가 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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