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김홍인/『당신이 최고야』

  • 입력 1997년 11월 22일 09시 21분


한회사 한부서에서 만나 어렵고 긴 3년간의 연애. 그리고 이제 결혼한지 4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얼굴을 보고 지내면서 아내와의 사이에 처음의 긴장감이나 애틋함이 사라지는걸 느낀다. 회사일을 핑계로 귀가시간이 늦어지는 남편에 대한 불만에다 부쩍 심해진 세살배기 딸아이의 이유없는 투정. 아내는 요즘들어 자신의 일상이 따분하고 재미없다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아직도 밖에 나가면 아가씨로 「오해」받는 자신이 집에서는 영락없는 아줌마로 좋은 시절을 썩이고있다는 푸념이니 그냥웃어넘길 수 없는 이유있는항변이다. 어쩌다 회사가기싫다고 할라치면 그런 말 함부로 말라고 쏘아댄다. 새벽공기를 맡으며 직장에 나가는 것이 소원이란다. 그런데 얼마전에야 아내의 불만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 딸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문화행사」를 가진지가 까마득하다는 아내의 불평에 못이기는 체 동네 노래방에 갔을 때였다. 최신 유행곡과는 담이라도 쌓은듯 결혼전에 연애할 때 부르던 노래만 반복하던 아내는 급기야 유행도 못 쫓아가는 구세대로 변했다면서 크게 낙담하는게 아닌가. 모른 체하기에는 아내가 자못 심각했다. 그런 아내의 기를 살려야만 했다. 가장 쉬운 일은 역시 『당신이 최고다』 『예쁜 딸 무럭무럭 자라지, 일편단심 당신만 사랑하는 남편 있지 뭐가 부러워』 하며 말로 때우기. 가능하면 일찍 퇴근해 아이스크림도 사들고 갔다. 신혼 때처럼 설거지도 하는 등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부부가 서로에게 익숙해졌다면 그만큼 편하고 부담없다는 뜻이겠지만 반대로 그만큼 무신경해졌다는 얘기도 된다는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입 꾹 다물고 아내의 불만을 그저 투정으로만 치부했으니…. 평생을 함께 할 반려자. 가까울수록 예의를 차리고 존중해야 한다는 옛말을 되새겨야지. 아내의 얼굴이 밝으면 집안이 환해진다. 고작 장미 한다발과 달콤한 말 한마디에 마음을 여는 아내에게 다시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아내가 하고 싶어하는 부업이나 직장생활도 다시 시작하도록 도와줘야겠다. 맞벌이하다 그만둔 뒤로는 오직 아내의 알뜰함으로 버텨왔는데 그런 아내의 기를 살려주는 일은 내게 다른 무엇보다 급하다. 김홍인(서울 영등포구 당산동1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