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이광형/「정책대결」선거 계기되길…

  • 입력 1997년 10월 23일 20시 04분


대선주자들의 정보화 정책포럼을 보며 나는 잠시 아련한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반공웅변대회가 불현듯 생각났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반공이 어떤 것인지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선생님이 써주신 원고를 외우기 위해 되씹고 되씹다 보면 웅변대회가 끝날 때에는 나도 모르게 공산주의가 왜 나쁜지 왜 반공을 해야 하는지까지 알 것 같았던 기억이다. ▼ 구체성 결여된 느낌 ▼ 5명의 대선 후보들은 정보화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과 정책비전을 보여주었다. 공히 21세기 정보화를 위해서는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조기에 확충하여 정보 인프라를 완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밀려오는 정보화 물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육성이 시급하고 아울러 전문인력의 양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이 단지 선언적일뿐 구체성이 결여된 느낌을 받았다. 이회창(李會昌)후보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정책 비전을 보여주었다. 법관출신답게 정보화 관련 법령제도의 정비를 강조하면서 비교적 구체성을 갖췄다. 김대중(金大中)후보는 준비된 원고에 의지하지 않고 어려운 정보통신 용어를 자유로이 구사하여 정보화를 잘 이해하고 있고 스스로 소화한 내용을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면서 정보보안 등 생활 속의 정보화를 강조했다. 김종필(金鍾泌)후보도 종합적인 공약을 제시하였는데 특히 기술개발과 테크노파크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면서도 정보화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입각한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다는 느낌이다. 조순(趙淳)후보가 보는 정보화는 문화적인 측면이 강했다. 정보화의 걸림돌은 기술개발을 위한 연구개발비 부족이라기보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마음에 있다고 했다. 이인제(李仁濟)후보는 당찬 모습으로 사이버코리아 스피드경제 등의 참신한 용어를 써가며 정보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보통신에 몸을 담고 있는 필자도 연설만 들어서는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대통령이 되어 21세기를 열겠다는 다섯명의 후보들이 정보화 정책에 대하여 「말의 성찬」을 펼칠 때 나는 과연 그들 모두가 그들이 하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그 약속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바꾸게 될지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대부분의 후보들은 어려운 용어가 포함된 원고를 읽기에 바쁜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반공웅변대회처럼 이런 정책발표회를 반복하다 보면 우리나라에도 미국의 고어와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같은 정보화 지도자가 나올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 21세기 희망 심어줘 ▼ 아무튼 대선후보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정보화를 공부하고 정책을 세워 이렇게 발표할 만큼 정보화가 국가의 중심과제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21세기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해주었다. 이번 정책발표회를 계기로 본격적인 정책 대결 위주의 선거풍토가 정착되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게 되어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이광형 (과기원 교수·본보 대선기획자문위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