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이지영/출퇴근시간의 책읽는 재미

  • 입력 1997년 10월 11일 07시 46분


작년 여름 남편이 수원으로 발령나는 바람에 우리 가족은 정들었던 상계동을 떠나 분당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생각과는 달리 여기저기 공원이 많고 공기가 맑아 첫인상부터 좋았다. 문제는 경복궁역 근처의 직장을 다니는 나의 기나긴 출퇴근 시간이었다. 파트타임이라 하루 4시간 일하자고 왕복 3시간여를 지하철에서 보내야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무려 1시간 가량이나 늘어난 출퇴근 시간이 무척이나 지루할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은 며칠 지나자 사라지고 말았다.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 다양하고 폭넓은 독서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독서생활에 절대적인 공헌자를 꼽으라면 단연 2주일에 한번씩 회사 근처로 오는 이동도서관일 것이다. 이동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기 시작한 것은 94년부터였다. 하지만 책을 읽는 시간이라고 해야 출퇴근 시간이 전부인데다 꾸벅꾸벅 조는 때가 많았기 때문에 한달에 두세권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작년부터 갑자기 독서량이 많아진 것은 전적으로 출퇴근 시간이 길어진데 있다. 이제는 완연한 가을. 쾌적한 3호선과 분당선을 타고 재미난 소설책 한권을 읽다보면 눈깜짝할 사이에 서현역에 닿곤 한다. 재미있는 책 한권을 읽다보면 어느새 내려야 할 정거장이 코앞에 있거나 벌써 지나쳐버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한번에 보통 5권의 책을 빌리는데 나름대로 원칙을 세웠다. 현대소설 2권과 학창시절에 미처 읽지 못한 세계명작 1권, 5세짜리 아들아이와 함께 읽을 아동서적 1권, 그리고 기타 수필집이나 실용서적 1권이 대충 정해져 있는 나의 대출원칙이다.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을 주는 이동도서관이지만 유일한 아쉬움은 신간서적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꼭 읽고 싶은 신간서적이 있으면 가끔씩 서점에 들러 책을 구입하기도 한다. 직접 책을 사서 읽는 재미 또한 만만찮으니 내게 우리나라 출판계의 발전을 위해 일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이동도서관이 고마울 뿐이다. 이지영(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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