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전성인/금융개혁 이렇게 끝낼수 없다

  • 입력 1997년 9월 25일 19시 57분


국회 재경위원회는 23일 한국은행법 개정안과 금융감독기구설치법 제정안 등 13개 금융개혁 관련법안에 대한 공청회를 가졌다. 그러나 이 공청회는 연말 대선 관련 정치기사와 기아그룹의 화의사태 등 다른 문제들에 묻혀 여론의 별다른 관심을 얻지 못했다. 통화신용정책과 외환정책이 갈팡질팡하고 있고, 금융권 전체가 신용위기에 직면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의외라고 볼 수 있다. 지난 5월 금융개혁문제가 여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뜨거운 감자」였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초라한 현실은 격세지감마저 느끼게 한다. 그러나 누가 무어라 해도 금융개혁은 현재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하루빨리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금융구조를 갖추어야 제2, 제3의 기아사태를 막을 수 있고 금융권의 위기 때문에 나라 전체가 동요하는 도미노현상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많은 사람들은 눈앞의 기아사태는 개탄하면서도 기아사태가 발생하는 데 크게 기여(?)한 우리의 금융현실을 교정하는 데는 눈을 감고 있다. 외환시장의 위기와 주식시장의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있어도 올바른 통화신용정책의 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한 제도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차 잦아들고 있다. ▼ 입벅과정에서의 변질 ▼ 이같은 무관심의 결과는 무엇일까. 그것은 현재 뒤죽박죽 상태로 엉성하게 짜깁기한 금융개혁법안이 별다른 교정절차 없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하여 제도로 굳어질 가능성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모처럼 시작한 금융개혁이 오히려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개혁이란 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따라서 개혁추진작업의 핵심은 최종적으로 어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시행령으로 구체화되는가에 달려 있다. 개혁작업 초기에 아무리 훌륭한 주장이 제기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궁극적으로 입법화의 과정을 밟지 않는 한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통상 개혁 초기의 토론과정에서는 많은 주장을 제기하고 큰 관심을 표명하지만 정작 중요한 입법과정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입을 봉하기 일쑤다. 문민정부 들어 실시한 많은 개혁들이 실패한 이유 중의 하나는 입법과정에서의 변질과 왜곡을 감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금융개혁 역시 동일한 이유 때문에 또 하나의 실패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 기득권층 로비 차단을 ▼ 현재의 금융개혁법안들이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없고, 이해관계집단들의 나눠먹기식 흥정의 산물이라는 점은 그동안 여론을 통해 누차 지적된 바 있다. 「나 아니면 안된다」는 오도된 사명감과 기득권의 유지에 열중하는 재정경제원, 신용체제의 건전성 유지보다는 맹목적인 통화관리에만 열중하다가 갑자기 신용감독기구의 화신인 양 행세하는 한국은행, 공무원 사회에 강제로 편입되어 봉급이 깎이고 찬밥(?) 신세로 전락할 것을 걱정하는 은행감독원 등 금융개혁의 방향을 왜곡시키고자 노력하는 집단은 무수히 많다. 이들은 또한 실제로 입법과정에 참가하거나 국회를 상대로 로비를 벌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개혁이 올바로 추진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기존 법안을 폐기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만일 현정부가 이를 추진할 능력이 없다면 개혁작업을 다음 정부로 미루어야 한다. 기득권 계층의 흥정을 뚫고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치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금융개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전성인 (홍익대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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