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차범근/「전용구장」그렇게 힘든가

  • 입력 1997년 9월 4일 20시 07분


한국과 일본이 공동개최하는 2002년 월드컵 개회식과 개막전을 어디에서 열어야 할까? 대다수 국민은 당연히 서울에서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어 문제다. 얼마전 신문에 거창하고 화려한 마스터 플랜과 함께 뚝섬경마장 자리에 돔구장을 짓는다는 기사가 실렸다. 월드컵 개막경기와 예선경기를 그곳에서 치르고 그후에는 야구장으로 사용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말이 되는 것인가. 야구장에서 축구를 하라고. 그것도 월드컵을…. ▼ 월드컵열기에 부응못해 ▼ 한일간의 월드컵 유치경쟁이 한창 뜨거울 때 별다른 구체적 계획 없이 일본을 따라잡겠다고 덤비는 우리를 보고 외국의 축구인들이 불안한 듯 물었었다. 한국에서 월드컵 개최가 가능하겠느냐고. 당시 우리들도 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국민 모두가 꼭 하고 싶어하는 이 일을 해내기만 한다면 정부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해낼 수 있다』고 외국 친구들을 설득하곤 했었다. 그리고 팬들은 우리가 운동장을 가득 메워 축구열기를 세계에 알려줘야 월드컵을 유치할 수 있다는 순수한 염원과 애정으로 11월의 춥고 음산한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운동장을 빈틈없이 메워 FIFA 실사단을 감동시켰다. 이같은 국민적 지원은 월드컵 유치에 큰 힘이 되었다. 경기장마다 가득 찬 팬들, 거리마다 나부끼는 유치염원 플래카드, 자동차마다 시위하듯 붙이고 다니는 2002년 월드컵스티커 등…. 월드컵 유치는 바로 이런 우리 국민의 뜨거운 염원이 FIFA를 감동시키면서 일본과 아벨란제를 놀라게하고 이루어진 것이었다. 국민적 열기로 이렇게 어렵게 따온 월드컵. 그러나 그후 월드컵 준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야구장에서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기막힌 발상으로 세계적 축제 월드컵을 치르겠다는 서울시의 한심한 태도. 나나 축구인들은 물론이고 축구팬들, 그리고 이제는 세계축구인들까지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월드컵 본선참가국들이 하나 둘씩 정해지면서 파리 주경기장은 멋내기에 한창이다. 아마도 프랑스 월드컵이 열릴 즈음이면 세계언론은 21세기를 여는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 개최지인 한국과 일본에 그 관심을 서서히 모으게 될 것이다. 『야구장에서 축구를 할 수는 없다』는 축구협회의 공식항의를 받은 서울시는 다음 대안으로 사유지가 다수 포함되어 있는 방이동이나 상암동 등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사유지 매입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겠는지 하는 의문이 든다. ▼ 개회식장소 빨리 정해야 ▼ 내년 이맘때면 차기 월드컵 개최지인 한국과 일본이 세계 축구인의 주목을 받을 것이다. 기막힌 첨단시스템으로 세계인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할 일본의 운동장들과 함께 머리띠를 두른 땅주인들의 결사반대 구호를 외치는 한국의 모습이 동시에 비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그런 만큼 뚝섬경마장 자리에 당초 계획대로 축구전용구장을 짓거나 아니면 서울 동대문구장부지를 활용하는 방법밖에 없다. 엄청난 부지매입 경비 문제와 시간 등을 감안할 때 그 외의 다른 묘안이 있을 수 없다. 하루빨리 서울 월드컵 개회식과 개막전을 치를 장소를 정하고 어떻게 멋진 경기장을 만들 것인지에 국민적 지혜를 모을 수 있도록 김영삼대통령이 결단을 내려 주었으면 한다. 이는 축구인들의 간절한 바람일 뿐 아니라 국민도 환영할 일이라고 믿는다. 차범근(월드컵 축구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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