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세도나 가는 길」

  • 입력 1997년 9월 2일 07시 39분


[장석주 지음/단 펴냄] 모래밭, 붉은 바위산, 습기 없는 바람, 선인장, 전갈과 방울뱀, 코발트색 하늘…. 사막은 황량하다. 그러나 문명과 개발의 수정이 가해지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자연에서 신(神)의 기운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의 작은 도시 세도나. 영적(靈的) 깨달음을 갈망하는 현세의 지친 영혼이 이곳에 모여든다. 시 평론 소설을 넘나들면서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를 시도해 온 중견작가 장석주. 출판사 주인으로 나서 직접 책을 찍어내기도 한 그가 「무언가에 홀린 듯」 태평양 너머 사막도시 세도나에 다녀왔다. 명상소설 「세도나 가는 길」(단). 시나리오 작가의 색다른 여정을 빌려 작가 자신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신성(神性)의 빛을 따라간다. 그러고선 단(丹)의 오묘함과 명상 삼매경의 희열에 몸을 떤다. 가출한 아내를 찾아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에 오른 서른세살의 시나리오 작가 최영호. 옆 좌석에 앉은 정갈한 인상의 여인 윤미사가 「영적인 기운이 넘쳐 흐르는 땅」 세도나에 대해 얘기한다. 선뜻 믿어지지 않지만 귀가 솔깃해진다. 「그곳은 지구의 혈맥에 해당한다. 우주와 지구 내부의 음양 에너지가 맞부닥쳐 전생과 내세를 이어준다. 정신이 맑아지고 의식이 또렷해지며 마음의 안락을 얻게 된다」. 소설의 축은 낯선 사람에 이끌려 낯선 땅을 방문하는 기연(奇緣). 욕망과 갈애(渴愛)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 군상의 삶이 그 틈새를 비집고 오버랩된다. 바위산 정상에 오른 순간 갑작스레 분출하는 땅 기운에 휘감겨 혼절해버린 주인공. 이내 초자연의 존재들과 시공을 초월하는 교감에 빠져든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선박공장에서 비칠비칠 목재를 나르던 자신의 전생, 앞으로 태어날 딸의 아리따운 영혼, 1만2천년전 지상에서 사라진 전설속 도시의 사람들. 신비주의의 울타리에 갇혀 있는듯 하지만 작품의 미덕을 찾아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등장인물들이 털어놓는 우주와 운명과 자연에 대한 단상을 곱씹는 것만으로도 옹색하나마 「대리 명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으니…. 작가는 불만족과 좌절을 핑계로 자학(自虐)하면서 오로지 더 큰 욕망만을 향해 질주하는 우리네 삶의 타성을 흔들고 싶었던 것은 아닐는지. 〈박원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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