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선택/기아사태 새국면]「살리기」보다「시간벌기」

  • 입력 1997년 8월 4일 22시 26분


채권금융단이 두차례나 회의를 연기해가며 기아그룹에 대한 채권유예기간만 연장하고 추가자금지원은 조건부로 하겠다고 밝힌 것은 일단 「시간벌기」에 들어간 것을 뜻한다. 채권단은 당초 △金善弘(김선홍)회장 등 기아자동차 임원 21명의 자필 사직서와 주식포기각서 △노동조합의 인원삭감 및 임금반납에 대한 동의서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추가 자금지원은 물론 채권유예도 계속 미뤄왔다. 그러나 진로 대농그룹과의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 비등했고 이같이 까다롭게 구는 것이 기아그룹을 특정 재벌그룹에 넘기기 위한 수순밟기라는 지적이 이어지자 결국 「절반의 선택」을 한 것. 여기에다 정부가 일부 재벌그룹에 인수시키기 위해 모종의 시나리오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정부가 이를 진화하기 위해 채권단에 최소한 채권유예라도 결정하도록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은 일단 두달 가까운 여유를 갖고 기아그룹 계열사에 대한 정상화 가능성을 실사한 뒤 향방을 결정하는 것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길이라는 판단을 한 것같다. 쟁점이었던 아시아자동차의 분리매각 문제도 실사 후 결정하기로 결말이 났다. 채권단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이유야 어쨌든 금융기관이 무조건 기아를 살려내야 한다」는 일방적인 여론이 수그러들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채권단이 『경영권포기각서(조건없는 사직서와 임원보유주식담보)및 노조의 동의서 등이 없으면 한 푼도 더 지원할 수 없다』고 못박은 것은 여론의 화살도 피하고 더이상 물려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속마음이 담겨있다. 이번 결정으로 기아그룹은 자구노력을 본격화하고 물대어음의 정상적인 결제에 온 힘을 기울여 자력회생을 꾀하게 된다. 하지만 그 일이 수월치 않다. 현재도 기아어음을 푸대접하고 있는 은행의 일선 영업점에서는 기아에 부도유예기간만 늘려준 것을 두고 「책임질 수 없으면 할인해주지 말라」는 은행 수뇌부의 암시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윤희상·천광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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