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연극「아버지」,재미도 감동도 없는 멜로드라마

  • 입력 1997년 7월 17일 08시 35분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 있었다. 아내와 다 큰 아이들에게 버럭 소리지르고 동네 과일장수와 터무니없는 이유로 싸움판을 벌이면서도 『왜 나를 몰라주느냐』고 큰소리만 쳤다.가족도받아주기힘든 「성격 파탄자」의술주정.뚝떨어져 앉아 있는 관객이 이해할 수 있을까. 서울시립극단은 창단기념 공연작으로 「아버지」를 선택, 지난해께부터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고개숙인 아버지 신드롬」에 가볍게 편승했다. 되도록 많은 대중과 만나는 「시민 연극」을 추구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천박한 상업주의」라는 비난을 우려했던 극단측은 세련된 심리묘사로 이같은 지적을 피하겠다고 지레 밝히기도 했다. 공연 10일이 지난 지금 결론은. 「아니다」. 그토록 오랜 기간 연극인들의 숙원사업이었던 서울시립극단의 창단공연작은 많은 이들의 기대를 안타깝게도 비켜나갔다. 그 이유로 첫째, 통속적 색채가 다분한 베스트셀러 소설을 바탕으로 했다는 「태생적 한계」는 지적하지 않기로 하자. 충효사상을 강조했던 70년대 목적극의 「97년 판」이라는 비판도 제쳐놓고. 둘째, 이 작품은 세련된 심리묘사로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내기보다 소설 줄거리 따라가기와 「이래도 안 울래?」식의 노골적 눈물샘 자극에 힘을 쏟았다. 더구나 원작에서 강조된 「바쁜 조직생활에 의해 희생된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극중 인물은 술독에 빠진 무능한 아버지일 뿐이었고 가족들의 일상적 다툼은 인간의 보편적 본질적 갈등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멜로드라마에 머물렀다. 또 결코 좁지 않은 중극장 무대를 연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채 마치 TV카메라로 이방 저방 찍듯이 옮겨다닌 배우의 동선, 화려한 스펙터클을 뵈주기는커녕 라디오드라마 듣듯 눈을 감고 있어도 지장이 없는 느릿느릿한 맥빠진 진행도 거슬렸다. 예술성과 함께 대중성을 목표로 삼겠다는 서울시립극단은 창단 공연에서만은 예술성을 과감히 포기한 것 같다. 대중성을 위해 개막 첫주 객석의 70%에 달하는 초대권을 뿌리기도 했다. 그러나 시립극단이 가까이 가고 싶다는 상당수 50, 60대 아주머니 시민들은 2시간15분 공연내내 잠을 자고 있었다. 그렇다면 시립극단은 왜 창단했을까.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싶었다면 마을회관에 TV 한대씩 나눠주면 충분했을 텐데. 〈김순덕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