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요즈음 차기 대통령의 자질에 대한 논의가 많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면 안보 문제에 관한 대응능력, 경제 분야에 대한 식견, 그리고 높은 도덕성을 갖추어야 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판단할 때 안보 분야에서든 경제 분야에서든 우리나라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 같다.
국가간의 관계는 복잡하고 긴밀하게 얽혀 있다. 주변 강국들의 힘겨루기 틈바구니에서 우리나라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에 관한 냉철한 현실감각이 필요하다. 북―미 제네바 핵협상이나 4자회담 추진협상과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는 분명히 드러났다. 또한 대통령은 정상외교를 빈번히 하게 되는데 강대국의 지도자와 한번 만났다고 해서 국제정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과대평가하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도 실제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하에서는 특히 그렇다. 시장경제라고 해도 정부의 역할은 중요하지만 많은 경우에 시장경제의 원리를 무시한 인기 위주의 정책이 경제에 짐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 도덕은 개인가치 문제 ▼
문민정부의 많은 분들은 오랫동안 정치를 해왔다. 그들의 경제정책을 보면 굳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중의 인기를 중시하는 정책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었다. 원래 자본주의 경제운용 방식은 정치적으로는 인기가 없다. 시장경제의 성과는 장기간에 걸쳐 완만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선거때 여당은 범여권의 「보이지 않는 집단」의 도움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집권하고 나서도 대통령은 흔히 이 「보이지 않는 집단」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도덕성은 대통령의 중요한 자질이다. 그러나 국가가 나서서 도덕을 너무 강조하는 것은 위험하다. 金泳三(김영삼) 대통령은 임기초 국회연설에서 「도덕국가」라는 표현을 세번 썼다.
도덕은 개인의 가치 문제인데 도덕에 자율이 아닌 타율이 개입될 때 그것은 이미 도덕이 아니다. 국가가 법규가 아닌 도덕을 강조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
「정치적 대립을 범죄화한다」는 표현이 있듯이 도덕을 정치에 잘못 이용하면 정적(政敵)을 비도덕화, 심지어는 범죄화하는 사례를 부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정치에 부과된 이같은 많은 제약 속에서 대통령은 과연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할 것인가.
첫째로 대통령은 독선적이어서는 안되며 정서적 안정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대통령은 어떤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 역사에 흔적을 남긴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다 보면 정책의 잘못을 범하게 된다.
▼ 「한국식 낭만주의」경계 ▼
또 자기가 속한 분야에는 보수적이면서 자기가 속하지 않은 다른 분야에는 극단적으로 「진보적」인 우리나라 특유의 「한국식 낭만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5공화국 출범 당시의 산업통폐합 언론통폐합 등이 많은 부작용을 낳았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국제관계에 대한 조예가 깊어야 한다. 복잡한 세계 정세의 형성과정에 대한 이해, 국제 정치를 움직이는 인맥에 대한 지식, 그리고 우리나라가 격랑을 뚫고 대처해 나가는데 필요한 위기관리능력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현대는 집단안전과 상호의존의 시대다.
셋째로 정치와 행정을 철저히 분리 구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무엇을 해야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조지 부시 전대통령은 당선되고난 후 MIT대의 폴 새뮤얼슨 같은 저명한 경제학자들에게 경제 정책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첫번째 충고가 『선거공약을 무시하라』는 것이었다. 예비선거를 포함해 1년 가까이 선거운동을 하다보면 어느 지역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는데 선거 공약을 그대로 실행하겠다고 하면 나라경제가 망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로서도 음미해볼 만한 대목이다.
실제로 우리 정치인들이 내놓는 각종 공약이 얼마나 치밀한 검증과 연구를 거쳐 만들어진 것인지 의문이 많기 때문이다.
스포츠를 포함한 문화분야까지 폭넓게 이해하면서 국민통합을 이룩할 수 있는 대통령이 선출되기를 국민과 함께 바란다.
정몽준<국회의원·무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