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개혁 진통/현장의 사람들]韓銀 김일환 조사역

  • 입력 1997년 6월 25일 20시 18분


「조사부의 빛나는 전통을 계승하여 국민경제의 안정과 발전에 헌신하자」. 창립 47주년을 맞은 한국은행의 10층 회의실. 고색창연한 액자 속의 문구는 조사1부 금융제도과 金日煥(김일환·39)조사역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러나 지난 16일 발표된 정부의 「중앙은행제도 및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은 그의 자부심을 뿌리째 흔들었다. 지난 82년에 입행해 16년째인 그의 업무는 금융제도 전반에 관해 정부의 구상과 한은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마다 중앙은행의 대응논리를 개발하는 것. 아침에 출근하면 먼저 재정경제원과 여론의 반응을 살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민주화교수협의회의 한은 독립성 및 중립성 지지성명, 금융단체장들의 정부안 지지성명…. 한은의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동료들과 토론한다. 노조의 「한은법 개악 저지대회」, 비상대책위원회의 「한은 독립성 확보 궐기대회」 등에도 논리적인 문안을 제공하기도 한다. 「한은은 앞으로 두고보자」는 식의 재경원 반응을 접한 날은 남대문 근처 포장마차에서 새벽4시까지 폭음을 하기도 했다. 금융제도과는 쟁점 사안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회의를 하고 비상소집도 잦아 출근시간은 있되 퇴근시간은 무한정이다. 『집에서는 저의 귀가시간을 놓고 내기를 한대요. 아들은 새벽1시, 딸은 새벽2시, 아내는 아침이라고…』 지난달 17일 금융개혁위원회 연찬회 때는 밤 늦게까지 비공개토론장 밖을 서성댔다. 다행히 금개위는 한은이 「은행의 은행」으로서 기능하도록 결론을 냈다. 그러나 지난 14일 총재가 합의했다는 정부의 개편안을 읽는 순간 온몸에 힘이 빠졌다. 총재와 직원들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 가장 난감한 일. 금융산업이 낙후한 것은 정부의 지나친 간섭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소신. 관치금융의 폐해가 온 나라를 뒤흔들었는데도 재경원 안(案)은 금융개혁 의사가 전혀 없음을 드러냈다고 그는 흥분한다. 정부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할까봐 불안하다는 그는 『채택될 전망도 희박한 한은 자체 법안을 만들어야 하는 「잔인한 6월」』이라고 탄식했다. 〈윤희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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