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예술 그 「부피」와 깊이

  • 입력 1997년 6월 24일 19시 52분


외교관으로 30여년을 일하고 요즘은 대학 강의도 하시는 한 분으로부터 지난주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보름간 미국의 하버드 예일대를 비롯해 유명하다는 사립 주립대학을 두루 돌아보고난 소회가 적혀 있었다. 「미국의 유명 대학들은 예외없이 학생의 40%이상을 외국에서 받고, 특히 일본 한국같은 나라의 학생을 유치해 재정적 문제를 해결한다고 합니다. 그것으로 교수 일거리도 늘리고요. 뉴욕의 세계적인 명문 줄리아드 음악학교는 한국 학생이 반이라고도 합니다.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 학력경쟁 위한 유학 ▼ 새삼스레 통계자료를 뒤적여 본다. 95년의 한 르포를 보니 줄리아드음대의 예비학교 과정에는 정말로 반수가 한국학생으로 나타나 있다. 재능있는 8∼18세 학생들에게 기악과 피아노 작곡 이론을 가르치는 70여년 전통의 이 학교는 총원이 3백31명인데 놀랍게도 그중 1백40명이 한국학생이라는 것이다. 음대도 8백50여명 가운데 정확히 헤아리기는 어려워도 한국학생이 기백명에 이르러 유학생중 최다라고 한 졸업생은 말한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 돌아와서 지금은 정보통신업체 사장으로 일하는 한 분이 필자에게 전해준 얘기가 떠오른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코메리칸 아이들, 미국적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그들 눈에 비친 「이상한」 어른들 얘기다. 첫째, 오디오 기기를 살 때는 반드시 세계적으로 그 상표를 알아주는 비싼 것으로 치장한다. 그러나 정작 그것을 틀어놓고 듣는 것을 보긴 어렵다. 둘째, 음악에는 관심이 없으면서도 아이들에겐 죽기살기로 레슨을 받게 한다. 취미와 소질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피아노 바이올린을 배우라고 성화다. 셋째, 음악학교 졸업식에라도 오면 다른 학부모와 구별된다. 교장이나 총장의 말에는 관심도 없고 카메라나 비디오카메라 촬영에만 열심이다. 아이들끼리의 「한국인 판별법」이 웃어 넘기기에는 서글프다. 누구라고 이 아이들의 날카로운 포착에서 자유로울 것인가. 값비싼 오디오 기기로 단장하고 학교건 물건이건 세계적인 일류만 거들떠보는 문화적 「거함 대포주의」. 음악이나 예술의 본질적 아름다움과 힘을 즐기는게 아니라 그것을 통한 학력이나 신분 경쟁에 더 달아올라 「예술과의 전쟁」을 벌이듯하는 우리 자화상은 아닐까. 거슬러 올라가면 여러가지 사정이 얽혀 있겠다. 입시중심의 교육제도에도 걸리고 학력과 겉치레를 중시하는 문화풍토와도 이어져 있다. 한국에서는 학문이나 예술이 완성될 수 없다는 식의, 오직 외국에서 공부를 마쳐야 알아주는 「기지촌 문화의식」도 한 원인이다. 무엇보다 눈에 보이는 「부피」나 「크기」는 중시하면서도 정작 예술에 있어서 중요한,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이」에는 무관심한 탓이다. 국내에 오케스트라를 불러온다하면 세계 최고가라야 일류공연이 되고 그래서 외화 쏟기 경쟁이 벌어진다. 팝가수 팝오케스트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공연장에선 도처에 삐삐가 울리고 휴대전화 소음이 들리는게 우리 문화의 실상이다. ▼ 뒤로가는 문화 수준 ▼ 줄리아드 출신이나 거기에서 공부하고 있는 숫자, 음악회가 열리는 빈도, 혹은 예술의 전당 구내에 있는 세계 최고급 독일제 슈타인웨이 피아노의 대수만으로 치면 우리 수준은 결코 어느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한국을 「음악의 나라」로 꼽지 않는다. 부피에 걸맞은 깊이를 천착(穿鑿)하지 않으면 안된다.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선구(先驅)하려 한다면 지금의 「깊이」로는 안된다. 김충식(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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