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캠페인]경찰 사고처리,인력-장비 『초보』

  • 입력 1997년 6월 10일 10시 12분


지난 6일 오후 6시반경 주부 김옥자씨(55)는 서울 송파구 문정동 편도3차로 도로의 2차로를 달리고 있었다. 3차로를 주행하던 택시 한대가 갑자기 앞으로 끼여들어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뒤쪽에서 「쿵」소리가 들렸다. 뒤따라오던 정모씨(30)의 승합차가 김씨 차를 들이받은 것. 정씨는 『이모씨(37)의 트럭이 내 차를 뒤에서 들이받아 그 충격으로 김씨 차를 추돌했다』고 말했으나 이씨는 『내 차가 정씨 차를 추돌하기 전에 이미 정씨 차가 김씨 차를 들이받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의 조사 결과 정씨가 옳았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씨가 이를 수긍하지 않는 바람에 조사는 이날 오후 11시경까지 계속됐다. 피해자 김씨는 양측이 합의할 때까지 5시간을 경찰서에서 기다려야 했다. 이 사건을 조사한 서울 송파경찰서 교통사고조사반 韓尙雲(한상운)경장은 『접수되는 접촉사고 10건중 8건은 현장에서 잘잘못을 가릴 수 있는 것』이라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 여러 사람이 몇시간씩 고생을 하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11일 오전 9시반경 서울 종로구 창경궁 근처 편도2차로 도로 1차로에서 명륜동 방향으로 가던 시내버스가 끼여들던 승용차의 백미러를 부수는 접촉사고가 발생했다. 버스운전사는 승용차운전자와 옥신각신 다투다 『경찰서에 가서 잘잘못을 가리자』며 버스를 세워둔 채 차열쇠를 갖고 경찰서로 가버렸다. 이 바람에 경찰이 버스를 견인하기까지 두시간동안 광화문에서 성산로까지의 5㎞ 구간에 극심한 교통체증이 빚어졌다. 청렴공직자의 대명사인 잠롱 전 방콕시장이 태국 교통경찰의 부패상을 개탄한 적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교통경찰이나 사고조사반은 금품요구 관행이 가장 심한 공무원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그만큼 단속이나 사고처리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는 얘기다. 녹색교통운동 林三鎭(임삼진)사무총장은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는 운전자들의 양심불량이 문제지만 교통사고 처리의 지연과 불투명도 큰 문제』라고 말했다. 더욱이 작은 사고라도 나면 운전자들은 온갖 연줄을 동원해 경찰에 영향력을 미치거나 금품을 주려하는 그릇된 습관에 중독돼 있다. 또 사고조사요원의 전문성은 약하고 과학적 장비도 부족하다. 이러니 교통사고 관련 민원이 줄을 이을 수밖에 없다. 경찰청도 사고조사반을 전문성보다는 부조리 배제와 순환인사 위주로 배치해 작년말 현재 3년 이상 경력의 조사요원은 전체의 12% 뿐이다. 교통사고 조사에 필수적인 카메라와 도로거리 측정기를 가진 교통경찰관은 10명중 4명 꼴이고 사고현장을 입체적으로 나타내는 첨단장비인 입체사진도화기와 분석기는 국내에 37대 뿐이다. 이러니 사고조사는 수박겉핥기일뿐 대부분 현장확인과 당사자 및 목격자 증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차를 세워둔 채 멱살잡이나 이단옆차기의 활극을 벌이고 교통관련 민원이 끊이지 않는 이유의 하나다. 고질적인 늑장출동과 과중한 업무부담도 교통사고 처리의 투명성을 낮추는 또다른 요인이다. 출동이 늦어지면 교통체증이 빚어지고 사고현장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서울 성동경찰서의 한 조사요원은 『사망사고의 경우 41가지 서류를 꾸며야 한다』며 『하루 종일 서류작성에 매달릴 때도 있어 정작 현장조사를 부실하게 하는 경우도 많다』고 털어놨다. 교통개발연구원 薛載勳(설재훈)박사는 『조사요원의 전문화와 과학적 장비를 구비한 현장조사로 사고처리과정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며 『사고조사를 1회에 끝내지 말고 다른 요원이 재조사하거나 경찰서별로 사고조사감독반을 운영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이철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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