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북동쪽을 바라보면 바다로 툭 튀어나온 언덕이 눈에 들어온다. 한때 송림과 잡목이 우거졌던 이 곳이 부산시민은 물론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달맞이고개다.
그러나 달맞이고개에는 오래전에 세워진 아파트와 지난 몇년동안 집중적으로 들어선 빌라들로 가득차 생김생김이 서울외곽에 새로 개발된 주택지 풍경과 흡사하다. 이 곳의 맑은 하늘이나 짙푸른 바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이질적 느낌을 던져주고 있다.
빌라는 20가구미만으로 구성된 공동주택을 이르는 말로 흔히 특별한 주택유형으로 알려져 있지만 구성형식으로 보면 연립주택이다. 「해운대 빌리지 프로젝트」(우성빌라)는 5백평 안팎의 대지에 50평형 내외 18가구로 구성된 연립주택으로 비슷한 크기의 두 필지가 1백50m쯤 거리를 두고 같은 언덕길에 면해 있다.
따라서 바다와의 관계를 생각하는 일은 이 단지설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것은 그저 집안에서 해변이나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역의 장소적 특성을 살펴보고 알맞은 집의 형태와 공간구성을 생각하는 일이었다. 원래 높은 위치라 어느 집에서도 바다가 보여야 하겠지만 이미 바다쪽으로 선 빌라가 앞을 막아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도로에 면해 45도로 어긋난 앞동에서는 창문을 통해 멀리 해수욕장을 바라보도록 했고 5층으로 올린 뒷동에서는 시원한 바다풍경이 집안으로 가득 들어오도록 했다.
집의 바깥모습도 붉은 벽돌이 대부분인 주변과는 다르게 밝은색으로 벽을 마감하고 언덕 너머 어촌인 청사포의 풍경에 맞춰 돌담을 쌓아 장소의 의미를 강조했다.
공동주택 설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유영역을 처리하는 방법이다. 해운대프로젝트에서 두 동사이에 난 골목길이 가장 중요한 디자인 개념이었으며 공유영역의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대지의 경사를 따라 올라가도록 되어있는 길은 작은 마당을 통해 각 가구의 현관으로 연결돼 있다.이에 따라 주민들의 생활은 길―마당으로 확장되며 오르내릴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즐기게 된다. 이 길―마당은 좁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상이 살아있는 장소이며 도시속의 또 하나의 작은 도시이다.
조성룡<조성룡도시건축연구소 대표>
▼약력 △인하공대건축과졸 △서울건축학교 운영위원 △아시아선수촌과 기념공원 설계 △서울시건축상 한국건축가협회상 수상 02―578―5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