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에세이/21세기 앞에서]변해야 생존한다

  • 입력 1997년 6월 6일 20시 17분


21세기를 목전에 둔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 경제적 환경변화는 우리에게 강도높은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변화불감증」 「복지부동」에 대한 비판과 질책만이 비등(沸騰)할 뿐 실질적인 변화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바닷속의 조개는 주위가 조용하면 기어나와 활동을 하다가도 시끄러우면 두꺼운 껍데기를 꼭 닫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러한 수비적인 자세가 바로 발전의 걸림돌이다. 미래에는 무겁고 두꺼운 껍데기를 과감히 깨뜨리고 항상 변화를 추구하는 자만이 생존할 수 있다. ▼ 우선 나부터 변하자 ▼ 즉 「변화의 일상화」만이 밝은 미래를 보장한다. 성공을 거두었던 수많은 변화들의 공통점은 세가지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 공통점을 올바른 변화의 계명(誡命)으로 삼아 기업경영에 적용하려 애써왔기에 이 자리를 빌려 소개해 볼까 한다. 첫째, 모든 변화는 「나부터의 변화」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동심원의 파문이 처음에는 작지만 점점 커져 호수 전체로 확산돼 나가는 것과 같이 모든 변화의 원점에는 「나부터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나는 준비되었으니 너부터 먼저 변해 봐라」는 식의 방관적인 태도나 「나는 이렇게 열심히 뛰는데 너는 앉아서 편히 쉬느냐」고 남을 탓하는 태도, 또는 「나는 쉬는데 너만 혼자 뛰기냐」며 뛰는 동료를 질시하거나 뒷다리를 잡는 태도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변화의 장애물이다. 「나부터의 변화」 「너부터의 변화」는 비록 획 하나의 차이지만 그것이 만들어내는 결과는 전부(全部)와 전무(全無)의 차이인 것이다. 둘째, 변화의 방향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커다란 배를 서로 반대방향에서 잡아당기면 배는 꼼짝도 하지 않을 것이다. 변화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변화가 가져올지도 모를 불편, 불이익에 저항하는 이기주의의 전형적인 예가 「총론찬성, 각론반대」이다. 그러므로 변화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공감대를 확보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시적인 관점에 입각하여 부분최적화에 집착하게 되고 그 결과 나갈 길을 찾지 못한 채 미로 속을 열심히 뛰어다니기만 하는 모르모트와 같은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변화의 방향을 올바르게 제시하고 속도를 조절하는 「변화의 관제탑」으로서 사회지도층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꺼번에 모든 변화를 이루려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 쉬운일부터 차곡차곡 ▼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보아도 혁명이 성공한 예는 거의 없다. 아무리 실력있는 산악인도 처음부터 에베레스트 등정을 하지 않는다. 인수봉을 비롯하여 비교적 덜 험난한 국내의 산악코스를 두루 거친 후에야 티베트로 향한다. 변화란 이처럼 쉬운 일, 간단한 일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라가야 한다. 작은 변화라도 지속적으로 실천하여 변화가 가져다 주는 좋은 맛을 느껴보고 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럴수록 「나부터, 한 방향으로, 쉬운 것부터」라는 관점에서 우리의 변화과정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건희<삼성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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