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민병돈/현충일 아침에

  • 입력 1997년 6월 5일 20시 06분


한국전쟁 정전후 4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국이 전사한 미군의 유해발굴 및 송환에 막대한 예산과 노력을 투입하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낀다. 이스라엘은 전투중 실종자를 사망으로 확인할 때까지는 현역으로 대우, 진급도 시키고 그의 가정에 봉급을 보내며 돌봐준다. 실종된 중위를 중령까지 진급시킨 예도 있다. ▼ 생활 어려운 유자녀들 ▼ 국가를 위해 희생된 국민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이다. 67년의 6일전쟁과 73년의 10월전쟁때 외국에 나가있던 이스라엘 유학생들이 급거 귀국해 싸움터로 달려간 애국심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만하다. 이에 비해 우리는 6.25전쟁과 그후 반세기에 걸친 의사전쟁(擬似戰爭)에서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잊어서는 안될 많은 것을 잊고 있다. 포로교환때 북한이 돌려보내지 않고 계속 억류한 국군포로가 2만명으로 추정되지만 저들의 혹독한 탄압과 중노동으로 많은 수가 사망했을 것이고 생존자들도 이제 노쇠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94년에 그곳을 탈출해 귀환한 조창호소위가 이를 증언한다. 그런데도 우리 지도자들은 북에 이들의 송환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전쟁때 위급하니까 젊은이들을 동원해 방패막이로 쓰고는 이제 와서 외면한다. 오히려 북은 이곳의 비전향 장기수를 북으로 보내라고 끈질기게 요구, 결국 이인모노인을 데려갔다. 이노인을 보내고 정부는 많은 식량까지 보내주면서도 국군포로들을 돌려보내라고 요구하지 않는 잘못을 범했다. 지난 4월29일 서울에서는 6.25전몰군경 유자녀들의 시위가 있었다. 자신들에게 20세 이후에도 계속해서 유족연금을 지급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들은 불우한 환경에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친척집과 고아원 등을 전전하고 공장과 거리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잡초처럼 자란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성인이 되자 쥐꼬리만한 유족연금마저 끊어졌으니 이들의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50년에 태어난 유자녀의 경우 20세가 되기 직전인 69년말까지 지급된 연금총액은 28만6천5백원이었다(62년 월 5백원에서 69년말 월 1천8백원으로 인상). 62년에 5백원이면 지금 돈 8만1천2백원, 69년에 1천8백원이면 지금 돈 5만4백원에 불과하다. 1인당 국민소득 87∼2백10달러시대의 여의치 못했던 정부 재정형편을 감안해도 너무 적다. 5.18희생자에게 지급한 억대의 보상금에 비하면 새발의 피 아닌가. 이 나라 지도자들에게 가치판단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 돌봐야할 도덕적 의무 ▼ 지금 우리가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를 구가하는 것도 지난날 전몰군경들의 고귀한 희생이 없었다면 가능했겠는가. 전쟁과 위난에서 살아남아 오늘의 풍요를 누리는 우리에겐 북에 억류돼 고통속에 연명하고 있는 국군포로들을 송환, 이들과 상이군경 및 전몰군경유족들을 정성껏 돌봐줘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올해도 현충일 행사가 반복되지만 시민들은 사이렌 소리에 맞춰 묵념하는데도 인색하다. 조기(弔旗)를 게양하지 않는 집이 많은가 하면 골프장과 유원지는 북적거리고 고속도로의 교통체증도 여전하다. 이날 하루만이라도 경건한 마음으로 지내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조선시대 말이나 6.25직전의 위기상황과 흡사한 지금 북이 남침한다면 젊은이들이 과연 전선으로 달려갈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지난날의 뼈아픈 과오를 교훈삼아 앞날을 대비하는데 소홀하다가는 「똑같은 과오의 반복」이라는 혹독한 역사의 징벌을 받게될 것이다. 호국영령을 추모하며 다시금 호국을 다짐할 때다. 민병돈 <전육사교장·예비역중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