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돈선거 추방의 첫 걸음

  • 입력 1997년 6월 5일 08시 19분


한보와 金賢哲(김현철)씨 비리 및 대선자금 의혹의 음습한 터널을 지나면서 우리가 얻은 값비싼 교훈은 돈정치 돈선거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중앙선관위가 어제 확정한 선거관계법 개정의견은 시의적절하다. 국회가 이를 얼마나 받아들여 입법화할지 모르나 일단 고비용정치구조 개선을 위한 논의에 공식 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선거관계법 개정의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돈 덜쓰는 정치의 틀 속에 정치권으로 흘러드는 돈이 투명성과 형평성을 갖춰야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거운동 방법을 바꾸고 정당운영체계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정치인이 정당 밖에서 비정상적으로 운영하는 사조직도 규제해야 함은 물론이다. 다만 이런 작업들이 가뜩이나 먼 유권자와 정치인의 거리를 더 멀게 하거나 선거분위기를 너무 침잠(沈潛)시키지 않을지에 대해서도 신중히 생각해봐야 한다. 가령 선거때 옥외연설회를 전면 금지하자는 의견만 해도 그렇다. 과거 예로 보아 대규모 대중집회가 「돈먹는 기계」 역할을 했고 선거과열을 주도한 것은 틀림없다. 때문에 TV와 신문을 활용하는 미디어 선거운동을 확대하고 대중집회는 옥내로 제한하자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됐었다. 문제는 그 경우 유권자와 후보자의 대면(對面)접촉기회가 줄고 「브라운관 후보」에게만 유리한 절차가 되지 않느냐는 점이다. 선관위는 이런 측면을 고려해 부분적인 옥내집회를 허용하는 절충안을 냈지만 민주주의 축제 성격으로서의 선거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한보사건으로 개선이 시급해진 정치자금 모금방법에 대해 선관위가 내놓은 의견은 대체로 바람직하다. 사조직의 비용을 불법 선거비로 규정해 처벌한다거나 정당이나 정치인이 기업으로부터 직접 돈받는 행위를 완전 차단키로 한 것은 옳다. 떡값의 처벌규정을 명시키로 한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모든 법인이 정당육성기금 형식의 목적세를 내도록 한 것이나 지정기탁금의 일부를 정당에 배분키로 한 것은 여전히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지정기탁금을 여당이 독식하는 불균형을 깨자는 구상은 좋으나 기탁자의 뜻과 달리 돈을 배분하는 것은 원칙에 맞지 않다. 차제에 지정기탁제도 자체를 유보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겠다. 대선이 6개월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정치권은 제도개선의 당위성만 강조할 뿐 정쟁(政爭)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은 촉박한데 당장 6월 임시국회의 소집전망조차 불투명하다. 이런 때 선관위가 먼저 법개정 의견을 내놓은 것은 의미가 크다. 이제는 여야도 그간 준비한 나름의 제도개선안을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빨리 국회를 열어 머리를 맞대고 정말 바람직한 개선 방향을 확정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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