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축제/프라하 5월음악제]선율로 꽃피운 봄

  • 입력 1997년 6월 5일 08시 19분


「백탑(百塔)의 도시」. 체코 공화국의 수도 프라하가 지니고 있는 별명이다. 바로크 고딕 등 중세의 건물들로 장식된 거리풍경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5월이면 이 고도(古都)에 달콤한 꽃향내가 퍼지기 시작한다. 봄이 찾아온 것이다. 「프라하」와 「봄」이라는 두 단어에서 사람들은 흔히 민주화, 정치적 자유 등의 개념을 떠올린다. 지난 68년 구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좌절됐던 민주화 운동 때문. 그러나 탱크와 군화발의 자국은 옛 얘기일 뿐이다. 이제 「프라하의 봄」이라는 말은 매년 5월12일 스메타나의 교향시 「몰다우(블타바)강」의 유장한 선율로 시작되는 화려한 음악축제를 뜻한다. 프라하, 5월의 밤은 유난히 늦게 찾아온다. 5월의 변덕스러운 날씨탓에 하루에도 몇번씩 소나기가 지나간뒤 하늘은 유난히 청명해진다. 오후8시가 가까워서야 블타바강 서안의 프라하성 너머로 마지막 남은 금빛 햇살이 모습을 감추면 19곳이나 되는 음악회장중 두세곳에는 정장차림의 음악팬들이 속속 모여든다. 음악회장이라지만 음악공연만을 위해 건물전면에 돌기둥을 우뚝우뚝 세워 만든 연주장은 「루돌피눔」 등 제한된 몇곳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중세의 옛 교회, 옛 시청건물, 왕가의 궁전 등이 연주회장으로 모습을 바꾼 것이다. 연주장들은 음악공간이라는 특징 외에 역사의 향기를 머금은 공간으로서 이중의 매력을 지닌다. 지난달 19일 옛 시청을 개조한 복합문화공간 「오베츠니 둠」의 「스메타나 홀」. 창설 1백1주년을 맞은 체코 필하모니 관현악단의 연주회가 막을 올렸다. 올해 음악축제는 3년동안의 보수공사를 거쳐 재개관한 이 홀에 초점이 맞춰졌다. 콘서트 프로그램은 요세프 수크의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 및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2번 등으로 짜여졌다. 영국 얼스터 필하모니 관현악단의 상임지휘자 얀 파스칼 토르틀리에가 지휘봉을 들었다. 수크의 곡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한 인물은 작곡자의 손자이자 동명의 인물인 요세프 수크. 재개관한 스메타나 홀이 화려한 내부장식과 풍요한 울림을 자랑하는 가운데 콘서트는 열광적인 반응으로 끝났다. 체코 필하모니는 구동구권 최고의 앙상블을 자랑하던 성가(聲價)에 걸맞게 비단결같은 현의 합주력과 투명하면서도 강렬한 금관의 위용을 선보였다. 다음날인 20일은 프라하 성의 대통령궁 안에 위치한 「스페인 홀」에서 한국의 금호현악4중주단이 콘서트를 가졌다. 이방인에게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호화로운 연주장. 샹들리에와 조각상 등 가지각색의 장식물로 치장된 홀은 이곳이 금세기초까지 세계를 호령하던 합스부르크왕조의 한 왕궁이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회상하게 해주었다. 「프라하의 봄」음악제는 올해 52회라는 비교적 긴 역사를 가졌다. 46년 체코 필하모니 관현악단 50주년에 맞추어 당시 상임지휘자인 라파엘 쿠벨리크가 창설을 주도했다. 이후 68년 정치적인 격동기를 포함, 한해도 거르지 않고 「프라하의 봄」음악제는 매년 열려왔다. 첫해를 제외하고 이듬해부터 체코 필하모니가 연주하는 「나의 조국」으로 시작해 6월초 베토벤의 「합창교향곡」 연주로 막을 내리기까지 약 3주간 관현악 실내악 교회음악 등 온갖 형태의 고전음악 연주가 펼쳐진다. 올해는 19개의 연주홀을 사용해 20여개국에서 온 음악가들이 연주에 참가했다. 관객 연인원만 6만3천여명. 참가단체들의 면면도 호화롭기 그지없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 피아니스트 브렌델, 하프시코드 주자 레온하르트, 과르니에리 4중주단 등 이루 이름을 열거하기 힘든 유명 연주자들과 악단들이 「프라하의 봄」을 수놓았다. 21일 프라하 라디오 심포니의 연주회에서 만난 바츨라프(51·공무원)는 『정치적 압제하에서도 「프라하의 봄」축제에서 열리는 연주회를 비롯한 이 도시의 다양한 연주회는 시민들에게 「숨쉴만한 공기」를 제공해주었다』며 『세계인들에게 체코의 전통을 알리는 이 행사에 시민 누구나가 크나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신유럽 가족의 우등생」으로 우수한 기술력과 빠른 경제성장을 자랑하는 체코공화국에서 「프라하의 봄」음악제는 국가의 자존심과 높은 문화수준을 뽐내는 축제가 아닐 수 없다. 〈프라하〓유윤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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