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족벌정치와 인도네시아 총선

  • 입력 1997년 6월 1일 20시 25분


▼친족 중용(重用)주의 또는 족벌정치를 영어로 네포티즘 이라고 한다. 중세 로마교황들이 자기 사생아를 네포스, 즉 조카라고 부르면서 요직에 앉힌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 유래부터 구린 데가 있듯이 고금의 역사를 통해 네포티즘은 권력부패의 온상이자 정실인사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요즈음 민주주의를 한다는 일부 국가에서도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 총선에서 수하르토대통령은 아들 둘, 딸 둘 그리고 며느리 이복동생 사촌동생 등 7명을 국회의원에 당선시켜 일족 국가경영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수하르토 자신은 쿠데타로 집권한 후 30여년간 권좌를 지켜왔고 내년 봄에 있을 대선에 또 나설 예정이다. 그의 일족은 민의에 따라 국회의원에 당선됐다고 주장하지만 선뜻 믿어지지 않는다. 이들이 모두 여러개의 기업을 거느린 재벌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족벌정치가 아시아에서 특히 극성을 부리는 것은 흥미롭다. 서양에서도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실패로 끝났지만 부자세습을 시도했고 중동에서는 이라크의 후세인이 장남 우다이에게 독재대권을 물려주려 하고 있다. 반면 아시아에서는 필리핀의 마르코스, 인도의 간디, 스리랑카의 반다라나이케, 대만의 蔣介石(장개석), 북한의 金日成(김일성) 등이 족벌정치를 했거나 권력을 대물림했다 ▼학자들은 동양사회가 혈통과 인연을 중시하는 인치(人治)사회이기 때문에 이런 악습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혈연 지연 학연 등 인적 관계가 너무 끈끈해 서양에서 볼 수 있는 법치가 잘 안통한다는 것이다. 그럴 듯한 해석이지만, 이런 것들이 모두 후진국이나 독재국가에서 자주 마주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시급히 타파해야 할 대상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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