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인성교육현장/정직]사소한 거짓말도 단호한 처벌

  • 입력 1997년 5월 12일 07시 51분


프랑스 파리 교외의 뷔퐁거리에 사는 초등학교 졸업반 다미앙(11)은 얼마전 학교 유리창을 깨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오히려 칭찬을 받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덩치는 작지만 수영으로 단련된 몸이라 발길질이 꽤 센 편인 다미앙은 그날 방과후 친구들과 늦게까지 축구를 하다가 일을 저질렀다. 공에 산산조각난 유리는 작지도 않은 커다란 통유리였다. 축구를 함께 한 친구들 외에 이를 본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너희들, 선생님한테 이르면 죽어』 친구들에게 단단히 다짐을 받은뒤 서둘러 학교를 빠져나온 다미앙은 들키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다. 『엄마, 여기가 너무 아파서 못견디겠어. 나 유리창 깼어』 결국 다미앙은 하루를 못버티고 그날 저녁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엄마 마리앨랜 리몽부인에게 실토를 했다. 『정직하지 못한데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 네가 엄만 정말 자랑스럽구나』 리몽부인은 유리값에 대해서는 물어보지도 않고 다미앙을 칭찬하며 꼭 안아줬다. 그리고 다음날 학교에 가서 다미앙과 함께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그런데 선생님도 리몽부인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다미앙, 난 다 알고 있었지만 네가 오길 기다렸다. 사실대로 이야기해줘서 선생님은 정말 기뻐. 그 상으로 유리값은 물어내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다음부턴 조심하거라』 프랑스와 스위스 학교에는 도덕시간이 따로 없다. 우리처럼 「바른생활」이나 「윤리」시간을 정해 사람의 도리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 그런데도 자신이 한번 내뱉은 말을 번복하는 정치인을 보기 힘들고 사기와 불신이 빚어낸 사건이 신문에 오르내리는 일이 드물다. 아이들은 굳이 교과서를 통해 배우지 않더라도 정직과 신용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을 가정과 사회속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하며 자란다. 제네바 말라뉴 거리에 사는 프랑수아 크뇰부인은 『어렸을 때부터 정직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수치스런 일인가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 아이가 하는 사소한 거짓말도 그냥 넘기지 않았다』고 말한다. 남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 거짓말이라도 자꾸 하다보면 나중에 죄의식 없이 큰 거짓말을 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 이를 닦지 않았으면서 닦았다고 하거나 엄마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가는 일 등은 착한 아이들이라도 커가면서 한두번은 겪게 되는 사소한 것들이다. 그러나 크뇰부인은 그냥 넘어가지 않고 아이와 약속한 나들이를 취소하거나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못보게 하는 등 일일이 벌을 주고 이런 말을 해주었다. 『신뢰를 저버린 사람과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집밖을 나서도 정직과 신뢰를 배울 기회가 많다. 하다못해 푼돈인 버스요금을 낼 때도 그렇다. 프랑스와 스위스에서는 버스를 탈 때 버스표를 검사하지 않는다. 간혹 버스표를 보자는 운전사가 있지만 대개는 그냥 통과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버스를 공짜로 타고다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임승차하다가 걸리면 「신뢰를 저버린 벌」로 한달치 요금을 벌금으로 물어야 한다. 놀랍게도 무임승차로 벌금을 무는 예는 드물다. 취리히 프레이거리에 사는 초등학생 바바라 펠버는 『무심코 버스표 없이 버스를 탄 경우에도 버스표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 표를 사기 위해 다시 내린다』며 『검사를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마음이 불안해서…』라고 말했다. 파리에 1년간 연수를 다녀온 회사원 김모씨(35·서울 종로구 평창동)도 『설마 검사하랴 하는 마음에 무임승차하다가 걸려 거금을 문 적이 있다』며 『놀랍게도 그날 버스표 없이 타서 벌금을 문 사람은 나 뿐 이었다』며 부끄러워했다. 〈파리·취리히〓이진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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