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고시열풍에 멍든 대학

  • 입력 1997년 5월 11일 20시 09분


각종 고시를 준비하는 대학생들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대학교육이 멍들고 있다는 개탄의 소리가 높다. 대학도서관이 거대한 고시준비장으로 바뀐지 오래고 고시에 매달려 학과목 수강을 포기하는 학생들 때문에 강의실은 빈자리 투성이다. 자연계 학생까지 사법고시에 가세하는가 하면 대학원생 저학년생 할 것 없이 전공과 관계없이 고시에 매달린다. 캠퍼스 전체가 고시열풍에 휩싸이면서 순수학문에 대한 열정이나 문화활동은 시들해지고 있다. 고시바람은 명문대일수록 뜨겁다. 서울대의 경우 1만8천여명의 재학생 가운데 6천여명이 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졸업생까지 합하면 고시생이 1만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오죽하면 서울대 법대의 경우 이번 학기 들어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한 선배들을 초청해 고시 응시를 만류하는 특강까지 갖고 있겠는가. 때로는 방황까지도 아름다운 대학시절에 폭넓은 교양을 쌓아야 할 저학년생이나 전공분야의 기초를 다져야 할 대학원생들까지 고시 합격 하나에 매달린다는 것은 낭비다. 요즘 고시붐은 사법시험 등의 모집인원이 대폭 늘어난데다 경기침체에 따른 극심한 취업난, 안정적인 업종을 선호하는 직업관의 변화 등 여러 요인들이 겹쳐 일어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우수한 인재들이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몇년씩 고시공부로 세월을 보내는 것은 인적 자원의 적절한 배분이라는 면에서도 국가적 손해다. 고시에 합격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므로 이들이 일찍 다른 방면으로 눈을 돌린다면 사회를 위해서나 본인을 위해 훨씬 유익할 수 있다. 고시열풍은 대학으로서도 불행한 일이다. 고시붐은 대학의 위상을 뿌리째 흔들기에 충분하다. 학문연구의 기능을 상실한 대학은 더이상 존재가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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