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무엇이 박석태씨를 자살로 몰았나

  • 입력 1997년 4월 29일 19시 52분


한보비리사건이 한 은행간부를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朴錫台(박석태)전 제일은행 상무의 돌연한 자살은 한보사건으로 추한 모습을 드러낸 우리 사회의 부도덕성을 힐책하고 있다. 그의 유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말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말해야 할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그의 자살은 한보사건에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우리 사회의 뻔뻔함을 고발하고 있다. 그는 한보사건의 중요한 증인 가운데 한사람이었다. 그는 한보의 유원건설 인수 등 한보특혜의 내막을 잘 아는 실무자로서 국회 한보청문회와 검찰조사 때 청와대 개입여부, 한보와 제일은행의 국회로비 등에 관해 비교적 솔직하게 증언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국회 청문회 뒤 사석에서 『윗사람의 얘기를 뒤집는 것이 너무나 괴로웠다』 『고자질 한 것같아 괴롭다』고 말했다는 주위의 증언이다. 그 자책감과 갈등이 그를 자살로 이끈 것이라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잘못이 있다면 어느 누가 진실을 말할 경우 줄줄이 다칠 사람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비리가 우리 사회에 구조적으로 존재한다는 데 있으며, 그때문에 진실을 밝히는데 용기가 필요할 만큼 사회관행이 비리에 익숙해 있다는 데 원죄가 있다. 만약 우리 사회가 정직하고 원리원칙대로 움직였다면 한보같은 비리사건이 잉태되었을 리도 없었을 것이다. 또 그와 관련한 증언으로 한 은행인이 갈등과 자책감을 느껴야 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박석태씨의 자살이 모든 진실을 다 밝히지 못한 자책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더더욱 그의 죽음 뒤에 숨어 안도하는 사람들의 비굴함은 질책받아야 마땅하다. 박석태씨의 자살소식이 전해지자 국회 한보청문회에서 그를 신문했던 의원들 사이에 「혹시 그의 가슴에 못질이라도 한 것이 아닌가」하는 자성론이 인다고 전해진다. 단순한 증인을 피의자 다루듯 윽박지르고 모멸감을 주는 신문관행도 당연히 고쳐져야 할 일이지만 정작 자성해야 할 사람들은 거짓말을 일삼은 정치인, 한보사건의 장본인 그리고 이른바 외압의 실체다. 한 성실한 은행인의 죽음을 보고도 정작 책임있는 사람들이 속죄할 줄 모른다면 이 사회의 앞날이 밝을 수 없다. 박석태씨는 한보사건의 희생자다. 그러나 한보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데도 정작 속죄해야 할 사람들은 그대로 있다. 이 기회에 모든 진상을 털어놓고 마음의 짐을 덜기 바란다. 그러지 않고서는 박씨의 희생이 의미가 없다. 박씨의 자살은 검찰에 대해서도 한보의혹의 철저한 규명을 촉구하는 충고의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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