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종칼럼]역사재판엔 시효가 없다

  • 입력 1997년 2월 21일 19시 56분


요즈음 청와대가 수상하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은 차라리 「임기의 끝」이기를 바랄 정도로 괴로워하며, 비서실장은 「영혼이 아픈 심정」으로 반성한다고 했을까. 국정 최고책임자의 고뇌에 찬 긴 침묵에 국민은 불안하다. 노동법 파동 이래 한보의혹으로 지샌 두달, 국민은 피곤하다. 한보에 화가 나고 黃長燁(황장엽)에 충격받고 李韓永(이한영)으로 불안하다. 나라 안팎으로 할 일은 많은데 정부는 일손을 놓았고 민심은 흩어졌다. 나라의 구심점이 없다는 탄식과 함께 대통령의 국정 통제력 회복을 촉구하는 소리도 들린다. 나라꼴이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든 진짜 사회불안 세력은 청와대라는 말이 나오게도 됐다. ▼ 「한보」는 모든 국민의 고뇌 ▼ 「한보의혹」은 잘 살펴보면 해법이 보일 듯도 하다. 모든 연루자들이 『나는 아니야』라고 합창하고, 수억먹은 가신(家臣)이 억울하다며 항의하는 이면에는 아마도 민초들이 모르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청와대 주변과 여권실세들 사이에서 치고받는 깃털론이니, 희생양이니, 음모설에도 다 곡절이 있을 것이다. 「관련자」들의 명단이 언론에 흘러나오고 검찰 수사가 이를 뒤쫓는 숨바꼭질도 결코 우연일 수가 없다. 엎치락 뒤치락한 「현철이 조사」 소동에도 사연이 있을 터이다. 모든 과정이 권력투쟁을 가장해서 의혹의 「몸체」를 숨겨보려는 은폐공작의 막간극처럼 보인다. 아직도 진행중인 「한보게이트」는 7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의 단순한 도청사건을 은폐하려다 결국은 닉슨대통령을 사임으로까지 몰고간 워터게이트사건을 너무 닮아가고 있다. 한보의혹 공방은 이제 검찰에서 국회로 넘어갔다. 국민회의는 국회 대표 연설에서 한보의 「김대통령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의혹의 진원은 92년 대선자금이며, 무리한 대출외압은 그 「빚」을 갚기 위해 계속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자민련도 대표연설에서 「한보비자금 1조원의 권력연관설」을 주장했다. 만일 야당의 주장대로 대통령이나 문민정부가 한보의혹에 관련이 있다면 김대통령은 이를 국민 앞에 밝혀야할 의무가 있다. 요즈음처럼 나라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던 때도 드물다. 민생 치안 경제 안보 어느 것 하나 급하지 않은게 없다. 그럼에도 한보를 풀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국가권력의 도덕성과 정직성을 테스트하는 시금석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위대한 나라일 수 있는 것은 월남전의 수렁속에서도 국민과 언론이 워터게이트를 파헤치고 대통령의 고백을 받아내는 국가적 도덕률을 확립했기 때문이다. 한보의혹은 덮기 전에 열려야 한다. 한보문제의 「극복」은 김대통령의 고뇌인 동시에 모든 국민의 고뇌요 국가적 시련인 것이다. 이 시련을 딛고 고뇌를 풀 사람은 대통령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대통령은 「2.25 시국수습 특별담화」를 통해 한보의혹의 연결고리인 「92년 대선자금」의 전모를 밝히고 잘못된 과거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사과하는게 바람직하다. 김대통령이 「진퇴를 걸고」 의혹 해소에 나서는 용기를 보여줄 때 국민은 대통령과 함께 고뇌하면서 「한보」극복의 해법을 찾아나설 것이다. 그것만이 대통령도 살고 국가도 사는 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대통령은 또 한번 역사를 향해 기도하는 심경으로 문민정부의 태생적 「원죄」라는 92년 대선자금의 실체와 한보연관 의혹을 밝혀 정치풍토 쇄신의 기틀을 잡고 나라를 지켜야 한다. ▼ 92년 大選자금 전모 밝혀야 ▼ 한보의 「몸체」는 사실상 어느 특정인일 수도 있지만 「검은 돈」이 오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정치풍토요 비뚤어진 관행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정치개혁이야말로 빛바랜 문민정부가 국가와 국민에게 마지막으로 봉사해야 할 책무요 사명이다. 김대통령은 한보문제와 대선자금 문제를 결코 다음정권으로 미뤄서는 안된다. 역사재판에는 시효가 없으며 YS 스스로가 세운 이 위대한 불문율에서 그 자신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정구종 <출판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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