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옥의 세상읽기]애물단지 「마이 카」

  • 입력 1997년 2월 21일 19시 56분


드디어 차를 팔았다. 솔직히 말해 나는 운전하기를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이다. 바람 부는 여의도 광장을 건너다니며 십년 전에 운전면허를 땄으면서도, 왠지 운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가 차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꼭 한마디씩 했다. 『운전면허증을 못 따셨나보죠』 『혹시… 색맹은 아니에요』 어떤사람은 차 살 돈이 없어서 그러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오기도 했다. 그럴때면 난 『제가 성이 차씨잖아요. 그래서 제가 움직이면 그게 바로 차가 되는 거죠』라고 농담삼아 대답했다. 아침에 원고 쓰러 방송국에 갈때면 남편이 출근길에 떨어뜨려 주거나, 집에 들어가는 길에 남편과 연락이 닿으면 데리러 오는 식이었다. 어쩌다 쓸거리가 밀려있으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럴때 운전까지 해야 한다면 돌아버릴거란 생각이 들었다. 버스 타고 가면서 원고 내용도 구상하고, 택시를 타서 기사아저씨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대로 세상 돌아가는 풍경을 그릴 수 있었다. 원고 쓸 소재를 풍성하게 건지는 셈이었다. 그러던중 지난해 4월 책쓰기다, 방송이다 하면서 조금씩 바빠지자 남편은 당신도 차가 있어야 한다며 나를 설득했다. 워낙 겁이 많은 나의 첫마디는 『무서워서 싫어』였지만 슬그머니 한번 시작해볼까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나도 이제 당신 못데리러 다녀, 내 일도 복잡한데』 남편은 이렇게 본심을 드러냈고 아이들도 다른 엄마들은 모두 운전도 잘한다며 내 자존심을 건드렸다. 이래서 차를 샀는데, 그 날 이후 난 커다란 짐덩어리를 어깨에 올려놓은 것처럼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다. 브레이크 페달과 액셀러레이터를 바꿔 밟을 것만 같은 불안감, 좁은 공간에 주차를 할때면 내가 얼마나 운동신경이 둔하고 공간지각 능력이 부족한지를 절감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자동차라는 것이 원래 어떤 흉기같다는 평소의 선입견까지 더해져서 난 역시 자동차 운전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걸 인정해 버렸다. 누구나 겪는 고비인데 그걸 참지 못했으니 인내심도 부족하고 그나마 사고 한번 없었던 걸 감사해하는 소심덩어리. 하지만 자동차를 팔고나서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불편하게 생각하면서 그냥 가지고 있기보다는 아니다 싶을 때는 과감히 놓아버리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덕높은 스님들이 말씀하시는 「버리면 버릴수록 자유롭다」는 무소유의 참뜻을, 예수님이 말씀하신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그 깊은 뜻을. 차명옥<방송작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