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개구쟁이 천국」 뉴질랜드 유치원

  • 입력 1997년 1월 3일 20시 38분


외손녀 윤지가 다섯살이 되었다. 머나 먼 나라 뉴질랜드에 이민가서 살기에 보고싶을 때 볼 수 없는 게 늘 마음 아프다. 초등학교 일학년생인 제 오빠가 등교할 때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을 들고 가는 모습이 부러워 자기도 빨리 유치원에 보내달라고 보채 애를 먹었단다. 다행히 예비생으로 뽑혀 일주일에 세번씩 유치원에 가게 되어 그 애의 소원이 풀렸다고 한다. 유치원에 갈 때 입히라고 예쁜 원피스며 옷가지들과 직접 만든 화사한 망사드레스까지 곁들여 인편에 보냈다. 고 어린게 이것들을 입으면 얼마나 깜찍하고 예쁠까.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얼마전 뉴질랜드에 가 보니 그게 아니란 걸 알았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도 막노동꾼 같은 작업복 차림이었다. 건물 밖에는 고물상같이 갖가지 물건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아이들은 거기서 뒹굴고 뛰며 망치로 아무거나 두드리는가 하면 흙을 퍼 담기도 하고 밀가루 같이 반죽을 하면서 되바르는 등 제멋대로였다. 놀이기구들이 질서없이 여기저기 널려 어지럽지만 어린이들은 그림물감으로 그리고 바르고 옷에도 마구 칠했다. 그렇게 그린 낙서같은 것을 선생님들은 작품이라고 일일이 줄에 매달아 정성껏 말려서 집으로 보내주곤 했다. 하고 싶은 걸 아무런 규제없이 자유롭게 하도록 하는 현장교육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러는 속에 아이는 조금씩 사물에 대한 이해가 생기는지 제 그림에 대해 나름대로 설명하는 모습이 귀엽기만 했다. 『이건 비행기구, 이건 나뭇잎이야』 아이들은 그저 신나게 마음놓고 놀 수 있는 곳이어서 유치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유치원이 끝나도 선뜻 돌아오지 않으려 해서 애를 먹었다. 때로는 여벌 옷 한벌씩을 가지고 다녀야 할 정도니 그야말로 개구쟁이들의 천국이었다. 손녀애는 아직은 낯설고 말도 잘 안 통하지만 천진스러운 동심인지라 그곳 애들과 금방 친구가 되었다. 천마디를 나누어야 가까워지는 어른들과는 비교를 할 수 없었다. 오 진 영(경기 안산시 본오동 신안프라자 B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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