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어수선한 세밑을 보내며

  • 입력 1996년 12월 30일 20시 20분


어수선한 세밑을 보낸다. 어느 해고 이맘 때면 한 해의 못다한 아쉬움 속에 묵은 해를 보내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새해 맞을 채비를 해야 할 무렵이다. 그러나 올해는 그럴 마음의 여유조차 없다. 새 노동법의 여당단독 기습처리 이후 파업사태가 며칠째 이어지면서 뒤숭숭하다. 시민의 발인 지하철과 국민의 건강을 돌보는 큰 병원들까지 파업몸살을 앓고 있다. 무한경쟁시대에 국민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중지(衆智)를 모아도 어려운 마당에 참으로 걱정스럽다. 정치권의 여야대립과 노조의 불만이 동시에 상승작용을 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경제가 제대로 굴러간다면 정치쪽에 문제가 있다 해도 사회적으로 큰 일은 없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지금 매우 심각한 위기상황이다. 전에 없던 침체의 늪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업의 경쟁력강화가 필수적이며 노동법의 손질 또한 불가피했다. 그런데도 문제를 풀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누구나 말로는 경제가 어렵다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얼마나 위기상황인지에 대한 인식의 일체감이 없다. 아직도 위기를 위기로 바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치지도자들이 나라의 장래보다 당리당략과 정파이기주의에 몸을 얽고 있는 것이 문제다. 새 노동법이 발효되면 노조가 일부 기득권을 잃는 것이 사실이다. 반발과 저항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당면한 국가 최대과제가 경제회생(回生)이라는 데는 모두 같은 생각일 것이다. 경제회생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도 염두에 둬야 한다. 나라의 어려운 국면을 맞아 각 이익집단들의 자제를 당부하지 않을 수 없다. 대결을 일삼는 갈등과 마찰 속에서는 경제회생은 물론 나라의 밝은 장래를 기약할 수 없다. 집단이기주의는 잠시 접어두고 공동체 속의 일원(一員)임을 자각해야 한다. 정치든 노조든 기업이든 모두 자기책임의 원칙을 세우고 자기억제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조금씩은 자기희생이 불가피하다. 그럼으로써 이 가파른 사회분위기를 하루 빨리 진정시키고 새해부터는 새 분위기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특히 정치인들의 지혜와 정치력이 아쉽다. 아무리 내년에는 대통령선거가 있고 당리당략이 앞선다 해도 나라의 앞날을 내다보며 어떻게든 실종된 정치부터 빨리 복원(復元)할 생각을 해야 한다. 새 노동법의 국회 변칙처리는 원인과 결과가 맞물린 만큼 결국 여야의 공동책임임을 본란은 지적한 바 있다. 그렇다면 여야는 무너진 정치를 다시 일으켜세우는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야 모두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자제가 앞서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은 국가를 위한 정치지도자들의 결단력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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